[강다혜의 편집국 25시] 그들의 바닥

[강다혜의 편집국 25시] 그들의 바닥
  • 입력 : 2020. 05.21(목) 00:00
  • 강다혜 기자 dhkang@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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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왔으면 정말 바닥인거야."

고시생 시절 친하게 지내던 미화원 아주머니가 말했다. 큰 부족함 없이 살다 사업 실패로 인생의 바닥을 치고 있다고.

누구나 바닥이 있다. 아무에게도 보여주기 싫었던 모습을 들켰을 때, 인생이 이렇게나 망가질 수 있을까 좌절하는 순간.

코로나19로 시끌벅적하던 올 초, 우리를 경악하게 했던 사건을 기억한다. 여성을 "노예"라 부르며 성착취물을 공유하고 낄낄대던 'n번방'의 남성들이 세상에 얼굴을 드러냈다. 그들의 행동에 분노했고, 26만명이 동조했다는 사실에 황망했다. 인간의 바닥이 어디일까 생각해본다. 처절한 실패로 체력과 통장 잔고가 바닥났을 때, 시간과 노력으로 딛고 일어설 수 있는 바닥. 그리고 그들의 바닥.

현실에서 어떤 권력도 갖지 못했던 '박사'가 사이버 세계에서 군림할 수 있던 건 영상을 구걸하던 이들이 있어서다. 숨어야 볼 수 있는 영상. 인간이 만든 최악의 콘텐츠. 음지에서 무슨 짓을 했는지 알려지는 게 두려워. 거긴 내 바닥이니까.

"호기심에 그랬어요." 호기심은 마음이지 행동이 아니다. 마음이 행동으로 연결되려면 의지가 개입한다. 그래서 자신이 호기심에, 쉽게 한 행동이 누군가를, 세상을 얼마나 훼손했는지 직면하고 느끼는 고통스러운 시간을 겪어야 한다.

더 만만한 존재를 성적으로 지배하는 방법밖에 모르는 찌질한 존재가 없어지길 바란다. '남자는 다 동물이야' '남자가 그럴수도 있지'라는 말에 관대한 사회. 권력만 있다면 얼굴이 까발려져도 무혐의가 되는 사회. 이런 사회가 우리 사회라면, 변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언제까지나 바닥이다.

<강다혜 행정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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