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마을 가치 찾기] (8) 교육·교통 중심지 노형동

[제주마을 가치 찾기] (8) 교육·교통 중심지 노형동
농사짓던 넓은 대지에 도시 인프라 더해져 ‘상전벽해’
  • 입력 : 2020. 12.02(수) 00:00
  • 강민성 기자 kms6510@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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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당시 여러마을 사라진 아픔 간직하기도
30년 전엔 농촌… 현재 대단위 아파트 밀집
지속 개발로 인해 옛 흔적 사라져가는 현실
기존 공간의 가치 존중·문화 이해 태도 중요


"내 기억의 흐릿한 회색풍경 속에 짙은 초록의 뚜렷한 자태로 서 있는 그 나무, 백년 묵었다는 그 늙은 나무는 밑둥이 어른 팔로 한 아름이 훨씬 넘게 통이 굵었는데, 겨울철 모진 북풍에 시달려 그쪽 방향은 다 모자라지고, 마치 버선짝을 거꾸로 세워놓은 듯이 울담 높이에서 기역자로 꺾여 가지들이 남쪽을 향해 길게 뻗어 있었다." - 현기영의 '지상의 숟가락 하나'중

아파트 개발에서 지켜낸 팽나무

소설가 현기영은 자신이 어릴 적 살았던 노형 마을의 팽나무를 위와 같이 표현했다. 과거 노형동의 풍경에 이런 굵직한 팽나무는 흔한 모습이었다. 큰 나무 그늘에 의지해 옹기종기 사람들이 모여 휴식을 취하던 농촌마을의 풍경은 불과 20~30년 전까지 볼 수 있었다. 보리와 콩과 조를 수확하던 밭이 있던 땅에 지금은 아파트가 들어서고 상가들이 들어서 있다. 곳곳에 개울가와 연못은 사라지고 콘크리트 도로가 됐다.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풍경들이 그때를 살았던 어른들의 기억 속에 남아있다.

노형동의 역사는 600여 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원노형, 월랑, 정존, 광평, 월산, 해안, 신비마을에 각각의 마을을 이루며 형성됐다. 원노형에 제일 먼저 사람이 들어와 살았는데 '큰 못에 배를 띄우고 노를 젓는 형상'이라 해 노형이라 불렀다고 한다. 서쪽으로 무수천을 기준으로 애월읍과 나뉘고 동쪽으로 연동과 경계를 이룬다. 북쪽으로는 도두동과 이호동이 자리한다. 동서남북으로 도로가 잘 발달돼 있어 교통의 중심지다.

옛 모습이 남겨진 광평마을

노형동은 한라산과 인접해 있다. 아흔아홉골의 계곡을 시작으로 어승생악과 한밝저수지를 거쳐 신비의 도로가 이어진다. 그래서 과거 노형으로 들어온 사람들은 사냥과 목축을 했다. 지금은 도로가 잘 발달돼 도시 느낌이 깊지만 이 곳은 중산간 마을이었다. 4·3 당시에는 소개령이 내려 마을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수많은 희생자가 발생했다. 4·3 당시 희생자가 550여 명으로 가장 많다. 방일리, 함박이굴, 드르구릉 등은 잃어버린 마을이 됐다.

훌륭한 도시공원으로 변모한 소나무 숲

노형동의 현재 인구는 2만2259세대에 5만4498명이다.(2020년 9월 기준) 대단위 아파트 밀집지역이라 인구밀도가 높다. 그래서 이 곳에는 초등학교에서 대학교까지 12개의 교육기관이 자리한다. 그 외에도 관공서와 은행, 상가 등이 집중돼 있다. 하지만 이 같은 도시화는 불과 20여 년 전의 일이다. 노형지구의 첫 개발은 1993년 토지구획정리사업으로 시작됐다. 이후 2010년 노형2지구 개발사업이 시행되며 현재의 모습이 완성됐다. 농사를 짓던 밭에서 개발지역으로 묶여 허허벌판이 됐을 때의 노형은 그저 광활한 대지일 뿐이었다. 이에 도시 인프라가 더해지며 노형동의 가치는 더없이 높아졌다.

하지만 자본을 넘어서는 가치가 있었다. 백록초등학교 앞에는 작은 소나무 숲이 있다. 주변의 아파트와 어우러진 숲은 도시공원이 되어 주민들의 산책로로 활용된다. 그 소나무 숲 앞에는 400여년의 역사를 갖는 팽나무가 있다. 원래 도시계획에 의하면 이 나무와 소나무 숲은 베어지고 그 곳에 아파트가 들어설 예정이었다. 그러나 지역민들은 이 나무를 지켜내고 싶었다. 마을의 상징과도 같은 나무이기 때문이다. 환경단체들과 함께 이 숲과 나무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그 결과 나무와 숲은 그대로 보존되고 지금은 주민들의 사랑을 받는 장소가 됐다. 팽나무로 인해 반듯한 일직선의 도로를 내지 못하고 구부러지게 돌아가는 도로가 되었다. 덕분에 빽빽한 아파트들 사이에 공간이 생기고 휘어감아 돌아가는 도로 옆의 나무들이 내게 감겨 안기는 느낌이 든다. 몇 초의 빠름을 택하기보다 자연의 온화함을 느끼게 하는 길이다.

아파트 숲 너머의 광평마을에는 노형동의 과거가 묻어있다. 낮은 담벼락과 곳곳의 우영밭 그리고 마을의 팽나무 그리고 구부러진 좁은 골목길들이 남아있다. 멀리 도시의 소음이 아련하게 느껴질 만큼 차분한 마을이다. 그러나 광평마을의 서쪽으로 아파트가 들어서기 시작했다. 과거의 모습들은 점차 희미해지고 몇 년이 지나면 흔적조차 사라질지 모른다. 하지만 개발의 가치 못지않은 지켜야할 문화들이 있다. 새로운 환경으로 변화되더라도 기존의 공간들에 대한 문화적 이해와 함께 공간의 가치를 존중하는 태도가 중요해 보인다.

노형오거리에 다다르니 여지없이 두 어 번의 신호대기를 거치게 된다. 막바지 공사 중인 드림타워가 보인다. 아쉽게도 개장 이전부터 갖가지 문제점이 도출되고 있다. 과도한 빛과 바람 그리고 앞으로의 교통 혼잡과 하수처리의 문제까지 쉽지 않은 과제다. 도시계획 전에 이미 산출돼 예상했어야 할 문제들이지만 개발에 급급하다보니 멀리 내다보지 못했다. 모두가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노형동의 품격을 위해서라도 사람 중심의 개발을 이어가야 할 것이다.



[인터뷰]


“급격한 변화에 정서적 함양 필요”
이상봉(제주특별자치도의회 의원)


노형동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다. 어릴 적 이곳은 전형적인 농촌지역이었다. 보리, 콩 등의 밭농사를 지었다. 노형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보리를 수확하는 철이 되면 보리방학을 했던 기억이 있다.

노형동에는 원노형, 월산, 광평, 정존, 월랑, 해안마을, 축산마을 등의 자연마을이 있다. 각기 마을마다의 특성과 전통이 있다. 마을체육대회 등에서 강한 연대가 느껴진다. 예부터 지켜온 마을 정서가 진하게 묻어남을 알 수 있다.

과거의 노형은 지금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자연친화적인 곳이다. 곳곳에 습지 같은 물웅덩이와 연못이 많았다. 지금의 제주일고 위쪽은 밭도 거의 없는 소나무 숲이었다. 어른들은 한라산에 나무하러 가면 우리는 지네를 잡고, 산마를 캐고 꿩을 잡으러 다녔다. 과수원과 숲과 촐밭을 누비며 학창시절을 보낸 셈이다.

이후 노형은 도시개발로 대단위 아파트 단지가 됐다. 급격한 변화로 필요한 것은 정서적인 함양이다. 시민들이 걸어서 접근할 수 있는 거리에 문화 보금자리들이 필요하다. 대표적으로 꿈틀도서관이 있다. 이용 빈도가 높고 잘 활용되고 있다. 앞으로 노형청소년 문화의 집도 들어설 것이다. 청소년 관련시설은 당연시설인데 부지확보의 어려움으로 미뤄왔었는데 이번에 할 수 있게 되었다. 청소년들이 공유할 수 있는 문화공간의 확보로 지역 내 교류의 장이 될 수 있길 바란다. 그 외에도 사회복지시설을 확충해나갈 것이다. 어르신들의 복지 못지않게 어린이들을 위한 복지시설도 중요하다. 연령층별 특화된 복지 시설들을 위해 고민 중이다.

노형 드림타워개장에 앞서 여러 문제점들이 노출되고 있다. 공존하여 나가야 할 시설이라면 합리적인 해결책을 찾는 게 급선무다. 투명한 관리감독 체계를 만들고 현재 기술 능력의 최대치를 발휘하여 교통, 하수문제 등을 처리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게 필요하다. 지역민들의 의견을 적극수렴하고 중재하는 역할에 최선을 다할 것이다.





“과거 공동체 복원 위해 방안 찾아야”
고성룡(노형동 통장협의회장)


노형동은 선비마을이라 불리던 곳이다. 옛 전통이 남아있는 자연마을들이 있다. 하지만 대단위 아파트 단지들이 들어서며 정서가 바뀌고 있다. 각박해지는 느낌도 있다. 과거의 공동체를 복원하기 위해서는 소통을 위한 다양한 방안을 찾아야 한다.

또한 교통이 복잡해지는 등 정주여건이 불편해지고 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우회도로를 만들고 출구를 찾지만 쉬이 개선되지 못하고 있다. 더욱이 드림타워가 개장하면 이는 더 심화될 것으로 본다. 노형은 학교시설이 밀집한 곳이다. 카지노 등의 도박시설이 들어오는 것은 원치 않는다. 그 외에도 바람, 빛, 하수 문제 등이 예상되고 있다. 이에 대한 적절한 대처방안이 있어야 한다. 최근 코로나 19로 인해 주민설명회 등이 열리지 않고 여론조사로 대체하는데, 노형동민들의 의견을 적극 수렴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글·사진 조미영(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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