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밤새 안녕'이라는 말이 이렇게 일상으로 실감 나던 때가 있었나 싶다. 코로나 확산으로 죽음에 대한 불안과 우울감을 주머니처럼 달고 사는 세상이 됐다. 가뜩이나 경제가 어렵고 정치마저 혼란스럽다 보니, 서민의 평안은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코로나 확진 알림 문자 소리조차 듣기가 두렵다. 사람과 사람 사이가 멀어져 이웃도 참으로 무색해졌으니 누구든지 위로가 필요할 때인 것 같다.
인간은 늘 무병장수(無病長壽)를 꿈꾼다. 옛 선조들은 죽음에 대한 불안 때문에 무병장수의 복(福)을 기원하는 그림을 그려, 그 속에 삶의 희망과 염원을 담았다. 조선 후기에 성행했던 민화를 보면 복수(福壽)를 기원하는 문양이나 글자가 많은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십장생도(十長生圖)다.
십장생(十長生)이라 함은 예로부터 오래 산다고 믿어왔던 10가지 불로장생의 상징물인 해, 구름, 산, 물, 바위, 학, 사슴, 거북, 소나무, 불로초를 말한다. 조선 후기와 말기에는 대나무나 천도복숭아가 추가되기도 한다.
십장생의 의미를 보면, 해는 만물을 소생시키고 생성하는 에너지의 근원이고, 구름은 속세 초월한 풍류와 인생의 순리를 뜻한다. 산은 불변함과 굳건함, 물은 깨끗함과 순결.청백.겸손을 상징한다. 바위는 산과 공통적인 의미로 불변과 굳건함, 학은 장수(長壽)와 높은 기상, 사슴은 해마다 뿔이 떨어지고 돋아나 생명력을 의미한다. 거북은 수륙양생(水陸兩生)의 특성 때문에 신과 인간을 연결해주는 신령함과 함께 장수를 의미하고, 소나무는 항상 푸른 절개, 불로초는 선계(仙界)의 불로장생 약초(버섯)로 상징된다. 십장생도의 시원양식(始源樣式)은 언제부터인지 확실하지 않다. 십장생은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부분적으로 보인다. 십장생 그림에 대해서는 고려 말 이색(李穡)의 글에 자세히 언급되고 있다. 그러나 현존하는 십장생도는 대개 조선 시대 후기의 것들이다.
십장생도는 정초에 왕이 중신들에게 새해 선물로 내려줬다. 주로 왕실이나 상류 계층에서 세화(歲畵)와 축수용(祝壽用) 그림으로, 또 조선 시대에는 병풍 등 회화뿐 아니라 도자기, 나전 공예, 목공예, 혼례 때 신부의 수저 주머니, 베갯머리 자수품, 벼루 등 문방구, 건물 및 벽 장식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생활에 이용됐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우리 것의 소중함이 간과되면서 서구문화와 신식 문물에 떠밀려 애용되지 못하고 있으니 안타깝다.
옛것이라고 해서 다 낡은 것이 아니다. 우리 것에 선조의 지혜와 위트가 담겨있다. 조상들이 십장생도를 그려 무병장수와 안녕을 기원했던 것처럼, 지금이야말로 소나무든 대나무든 십장생 그림 한 점쯤 집에 소장해 자기 안위를 찾아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코로나 시국을 극복하는 상징적 의미에서. <양상철 융합서예술가.문화컬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