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다혜의 편집국 25시] 태어나 사는 것도 고단한데…

[강다혜의 편집국 25시] 태어나 사는 것도 고단한데…
  • 입력 : 2020. 12.10(목) 00:00
  • 강다혜 기자 dhkang@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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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 사는 것도 고단한데 ‘뭘 또 그렇게까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집 안보단 집 밖, 집밥보단 외식, 나른한 이불보단 보단 따스한 햇볕을 선호한다. 역시 행복은 문밖에서 나오지, 세상은 문밖에 있지. 코로나 시대에 밉상이 될 만한 조건을 모두 갖췄다 봐야겠다.

코로나19가 우한 폐렴이라 불릴 당시, 다니는 운동 센터에서 1시간 내내 마스크를 쓰고 운동하는 이를 보고 '뭘 또 저렇게까지'라는 생각을 했다. 어디서 어떻게 마시고 닿을지 모르는 공기 같은 실체 따위가 그토록 두렵단 말인가.

그렇게 마스크 아래 네 번째 계절, 티끌보다도 작은 바이러스가 일상을 지배하고 있다. 따스했던 기억은 아스라하고 다가올 날들 걱정에 마음이 시리다. 불나면 119, 도둑 들면 112에 신고하듯 보건소와 같은 공공기관의 통보를 기다리고 지침에 응한다.

정부의 권위와 지침에 협조하지 않으면 밉상이 되는 시기다. 순순히 개인정보를 까고, 동선을 알려주고 일사불란하게 격리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은 정부의 말을 들어야 그나마 안전한 세상을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래도 최소한의 검증이 된 보편적인 지식을 집약해 전하는 정부의 '지침'이다. 이에 반기를 들고 개인의 삶의 방식을 고수하고 싶다면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하는데, 그 책임을 실천하겠다고 나섰다가는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범위가 아닌 공동체를 파괴하는 지경에 이를 수 있다.

힘든 시기지만 나의 바다, 공원, 들판을 영영 상실하고 '그때 조심할걸'하고 후회하고 싶지 않다. 지금 고통을 웅크리는 이유는 모두가 같다. 지금 참지 않으면 내가 그토록 사랑하는, 눈부시게 빛나는 바깥을 영영 잃을 수도 있기 때문에. <강다혜 행정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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