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직업을 집대성한 한국 직업사전에는 '레지스트라(registrar)'가 등재돼 있다. 영어 뜻 그대로는 명부(register) 관리자다. 유물이나 예술품 등 가치가 높은 것들을 관리하는 명부일수록 전문가가 필요해서, 한국에서는 레지스트라를 예술품 관리원, 소장품 관리원으로 번역한다. 작품이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소장될 때 시작부터 끝까지 필요한 직업이 레지스트라다.
소장품들에 등록번호를 매겨 데이터베이스화 한 뒤에 수장고의 적합한 장소에 보관하고, 후에 전시에 필요할 경우 소장품을 다시 꺼낸다. 레지스트라에겐 작품의 수집부터 등록, 기록, 대여, 차용, 폐기, 수장고 관리 등과 관련된 업무들이 있고, 이 업무과정에서 문제가 없도록 확인 및 서류 작성을 담당한다. 소장품이 수장고에서 반출될 때 보험가 평가 및 가입, 작품 상태 점검 및 포장, 운송 및 호송의 과정도 감독한다. 여기서 더 세부적으로 들어가서 '쿠리에(courier)'라는 작품과 함께 이동하는 사람의 역할을 나누기도 한다. 레지스트라와 쿠리에는 소장품의 든든한 문지기이자 보호자다.
국내에서는 삼성리움과 국립현대미술관, 아라리오뮤지엄 정도가 레지스트라를 두고 있다. 아직 우리나라에 정착된 직업군은 아닌 탓에 대부분의 미술관에서는 큐레이터가 레지스트라 업무를 병행한다. 이제 한국에도 국공사립 미술관들이 많이 생기고, 소장품 관련 기록들이 디지털화되고, 미술 관련 직업군을 세분화하면서 레지스트라라는 직업의 필요에 대해서 공감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레지스트라는 미술관에서는 학예 직렬에 포함된다. 하지만 레지스트라라는 업무의 특성상 전문경력관일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있다. 장기적으로 보관되고 관리되는 소장품의 기억전달자 역할을 위해서는 순환직 공무원이 수행하기에 어려운 지점이 있기 때문이다. 레지스트라의 장기적인 근무가 체계적이고 안전한 예술품의 관리를 위해 필요한 조건이 된다. 전시기획을 위해 큐레이터가 있어야 하듯이 일정 규모 이상의 미술관 수장고가 있으면 레지스트라가 필요하다.
미술관에 꼭 필요한 또 하나의 전문직은 '아키비스트(archivist)'다. 아카이브하는 사람이라는 뜻의 아키비스트는 보존될 가치가 있는 기록물을 전문적으로 관리한다. 미술관의 아키비스트는 작품, 작가, 전시에 관한 자료들을 평가, 수집, 정리, 분류, 보존한다. 아트 아카이브는 실상 작품을 뺀 모든 자료-도록, 사진, 기록물, 유품 등-를 일컫는다. 레지스트라가 작품 지킴이라면, 아키비스트는 자료 지킴이가 된다. 그리고 이 지킴의 와중에 문제가 생긴 작품들을 치료해주는 이도 필요하다. 바로 '콘서베이터(conservator)'다. 수장고에 있는 소장품의 보존과 복원을 전문으로 하는 이로 미술품 보존 전문가다. 피렌체의 한 수복연구소를 배경으로 한 ‘냉정과 열정 사이’라는 영화의 흥행으로 그나마 잘 알려진 직업이다.
이 세 직업이 작가나 기획자, 평론가처럼 밖으로 드러나는 일을 하지 않다 보니 그 중요성에 비해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덜한 현실이 아쉽다. <이나연 제주도립미술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