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觀] 가족의 방향
  • 입력 : 2021. 02.26(금) 00:00
  • 김도영 기자 doyoung@ihalla.com
  • 글자크기
  • 글자크기

영화 '이장'.

5인 이상 집합 금지가 지속되고 있다. 예외 조항도 있다지만 시국이 뒤숭숭하다 보니 누군가를 만나는 일이 영 까다롭고 찜찜하다. 당연히 가족이라고 숫자의 예외가 되지는 않는다. 코로나19 시국의 사회적 거리 두기는 이제 이렇게 가정 안으로 깊숙이 거리를 넓혔다. 도무지 방도가 없는 상황의 흐름 속에서 손주들이 보고 싶은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은 영상 통화로 매일의 안부를 전하고 다자 영상 통화가 가능한 애플리케이션인 줌을 배워 가고 있다고 한다. 간절한 필요에 의한 노년 세대의 디지털 교육이 자발적으로, 가정 안에서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나는 최근에 손주들을 직접 보지 못한 채 꽤 오랜 시간을 지내는 부모님께 "애들이 그렇게 보고 싶어?"라고 물은 적이 있다. 대답 대신 둘은 정말로 그렇다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러더니 "당연하잖아 가족인데"라며 한숨을 내쉬셨다. 그리고 나서는 스마트폰 속 조카들의 사진이 가득 들어찬 폴더를 열어 말을 걸듯이 고개를 가까이 가져다 댔다. 가족이란, 그러게 가족이란 무엇일까. 가족은 도대체 무엇으로 이어져 있길래 이렇게 금지나 불가라는 선을 마음의 발로 매일 넘어가고 또 훌쩍 건너오는 것일까. 물보다 진하다는 그 피를 나누지 않았더라도 가족이라는 집합을 선택하고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서로를 감싸게 된다는 것은 대단하고 각별한 일이다. 그 가족이라는 호명은 이를테면 질감에 가까운 감각이 아닐까. 추위 속에 입혀지는 패딩이나 샤워 후에 얹히는 뽀송뽀송한 수건 같은. 그런데 궁금해졌다. 우리가 우리를 가족이라고 부를 때 우리가 바라보고 있는 곳은 항상 같은 방향일까.

 정승오 감독의 영화 '이장'은 서로 다른 처지에 놓인 다섯 남매가 돌아가신 아버지의 묘 이장을 위해 고향을 다시 찾아가는 이야기다. 2020년 개봉, 영평상 신인 남우상을 비롯 전주국제영화제와 바르샤바국제영화제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은 독립영화 '이장'은 '이장'이라는 간과할 수 없는 가족의 일로 모인 성인 형제들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그려내는 작품이다. 특히 각자의 고된 삶을 치열하게 살아가는 네 명의 누나와는 달리 게으르고 무책임한 막냇동생의 속 터지는 존재감을 통해 한국의 가부장제를 구성하는 핵심 구조이자 기이한 정서인 '대를 잇는 아들'과 '살림 밑천인 딸'의 행태를 사실적이고 섬세하게 그려낸 작품이기도 하다. 또한 영화 '이장'은 가족 드라마인 동시에 로드 무비로 그 장르적인 매력을 십분 발휘하는데 특히 예기치 못한 가족 여행이 되어버린, 고향으로 가는 차 안에서 벌어지는 감정의 난투극은 이 작품의 백미이기도 하다. 만약 국내 영화계에 앙상블 연기상이 있다면 아마도 첫 손에 꼽힐 수상 후보가 됐을 배우들의 생생한 연기 합을 지켜보는 재미가 대단한데 장리우, 이선희, 공민정, 윤금선아라는 독립영화계의 대들보 같은 배우들이 모자랄 것도 더할 것도 없는 앙상블의 맛을 느끼게 해 준다.

같은 배 속에서 태어났지만 다른 배를 타고 어른이라는 망망대해로 나아가는 다섯 남매의 이야기인 '이장'은 그들에게 당장 손을 잡는 섣부른 화해나 완전한 이해를 바라지 않는다. 다만 함께 가는 길에서 서로를 바라보는 일은 중요하다는 것을 돌리지 않고 말한다. 어쩌면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짐작할 수 있는 단서들을 가지고 있는 관계가 가족일 수도 있겠다.

 '환절기'와 '당신의 부탁'이라는 작품을 통해 대안 가족의 모양을 다양한 각도에서 사려 깊게 그려냈던 이동은 감독의 영화 '니나내나' 또한 가족에게로 향하는 가족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작품이다. 오래전 자신들을 떠난 엄마의 갑작스러운 편지를 받고 이제는 남이 되어버린, 엄마였던 가족을 찾아가는 삼 남매의 속내 또한 무를 리가 없다. 딱딱해진 마음과 커져버린 사연을 안고 차에 탄 그들은 하고 싶은 말과 할 수 없는 말들이 놓인 낯선 공간들을 함께 지나친다. 타인이라고 하기엔 너무 가까운 가족에게도 말하기 어려운 속사정을 그저 허심탄회라고 뱉어내기가 어디 쉬운 일인가. 진주에서 파주로 향하는 이 갑작스러운 가족의 여정은 부정과 부재로 얼룩진 지난날의 상처 위를 걷는 마음의 고행길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해피 엔딩이라고 할 만한 감정을 꺼내어 놓는다. 묵은지같이 시고 차고 묘하게 달기도 한 마음의 깊은 곳을 건드리는 감정이다.

 '이장'과 '니나내나'에는 일일 드라마와 주말 드라마에 나오는 복수의 불길과 응징의 칼날 대신 알루미늄 호일에 싸인 김밥을 먹는 자동차 안의 자매와 칼국수와 배추김치를 먹는 남매의 식탁이 등장한다. 두 작품을 보는 내내 눈과 속이 동시에 편안해졌고 작품이 끝난 후에는 휘발되지 않는 감각들이 살짝 욱신거리는 감정으로 느껴졌다. 삶과 죽음으로 대답할 수 없는 가족의 무수한 정답과 오답들이 머릿속과 가슴속을 일렁거리고 있었다.

<진명현 독립영화 스튜디오 무브먼트 대표>
  • 글자크기
  • 글자크기
  • 홈
  • 메일
  • 스크랩
  • 프린트
  • 리스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밴드
기사에 대한 독자 의견 (0 개)
이         름 이   메   일
1957 왼쪽숫자 입력(스팸체크) 비밀번호 삭제시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