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가끔 상관관계와 인과관계를 혼동한다. 큰 불이 났다고 치자. 여기서 화재 규모는 소방대원 출동 규모와 상관이 있다. 큰 불일 수록 불을 꺼야할 소방대원이 더 많이 필요할테니 이 둘은 상관관계다. 하지만 인과관계는 아니다. 소방대원이 많이 출동해서 불길이 커진 것이 아니다. 불이 커진 원인은 다른 곳에 있다.
수돗물 유충 사태가 재발한 지난달 제주도는 그 원인으로 송수관 파열을 지목했다. 송수관의 깨진 틈새로 들어간 흙과 자갈이 유충을 걸러내야 할 정밀여과장치를 막아 버렸으니 이 모든 사태의 원인이 송수관 파열에 있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제주도는 파열 지점에서부터 정밀여과장치로 이어지는 송수간 구간에 토사 배출 장치가 없다는 이유로 깨진 부위만 부랴부랴 보수했다. 결국 송수관에 남아 있던 토사는 정밀여과장치로 흘러 들어가 거름막을 막아 버렸다. 여과 장치는 송수관을 땜질 수리한 다음날인 지난해 12월28일부터 내부 압력이 3배 이상 높아지는 이상 신호를 보냈지만, 제주도는 한 달 뒤에야 고장난 사실을 눈으로 확인했다. 더 어처구니가 없는 건 제주도가 정밀여과장치 수리를 한달 간 미룬 채 여과장치도 없는 우회관로로 수돗물을 공급했다는 것이다. '겨울철에는 유충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해 여과장치가 없는 관로로 수돗물을 공급했다'는 해명은 기가 막힌다.
이쯤되니 인재나 다름 없는 이번 사태에서 제주도가 단순히 상관관계와 인과관계를 혼동한 것이 아니라 잘못을 감추려 일부러 송수관 탓을 한 건 아닌지 의심이 든다.
물론 그 속을 알 길은 없지만 교훈만큼은 분명해졌다. 제주도가 또다시 마련한 재발 방지 대책마저도 공직 사회에 파고든 무사안일주의를 깨뜨리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사람이 바뀌지 않으면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는 둘 사이 인과관계는 너무나 당연한 진리이지 않은가. <이상민 정치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