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희진의 하루를 시작하며] 팔리기 전의 모든 책은 서점 주인장의 자산

[권희진의 하루를 시작하며] 팔리기 전의 모든 책은 서점 주인장의 자산
  • 입력 : 2021. 03.24(수) 00:00
  • 이정오 기자 qwer6281@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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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서점의 이야기에 관심 있는 분들이라면, 사람들이 서점에서 책을 볼 때 생기는 문제에 대해 한 번쯤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페이지를 구기거나 침을 발라가며 본다거나 책 위에 아무렇지 않게 음료를 올려둬 표지를 오염시킨다거나 부주의하게 책을 다루다 떨어뜨려 책을 망가뜨린다거나 등등.

진열된 책들은 항상 훼손의 위험에 노출돼 있다. 그리고 많은 동네 서점들의 진열 책은 판매하는 책이므로 책 훼손에 대해 적잖은 스트레스를 받는다.

동네 서점의 주인들은 대부분 출판사나 도매상에 미리 책값을 다 지불하고 가져와 독자 여러분께 소개하고 판다. 바꿔 말하면 아직 팔리지 않은 상태로 진열된 책들은 서점 주인 개인의 소중한 자산이나 마찬가지란 뜻이다. 그런데 그렇게 망가뜨린 책을 본인이 구입하기커녕 미안해하기만 하고 그대로 간다거나 사과도 없이 슬쩍 나가버리면 그 우울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겉보기에 훼손된 책은 내용을 읽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더라도 사실 판매하기가 어렵다. 나 역시 동네 서점에서 책을 구입할 경우, 한 권씩만 입고된 책이 많아서 선택지가 거의 없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진열된 책의 훼손이 심하면 어쩐지 구입이 꺼려졌다. 심지어 서점 손님들 중에는 깨끗한 진열 책을 들고 와서 "이거 새 책 없어요?"라고 묻는 사람도 적지 않다.

우리는 반품을 안 하지만 업계에서 반품이 사라지지 않는 이상 훼손된 책들은 모두 반품 대상이다. 그 손해는 출판사가 고스란히 떠안게 돼 결국 출판사의 손해도 늘어나게 된다. 사람들이 서점의 책들을 함부로 보는 경향은 반품에 대해 큰 부담이 없는 대형 서점이 도서관처럼 '읽는 기능'을 강조하면서 생긴 부작용이기도 하다. 하지만 대기업도 아니고 수익 구조가 한정적인 작은 동네 서점이 이런 독자들의 니즈를 반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서점에서 마음대로 책을 살펴보지도 못하게 한다거나 손님들, 특히 아이들이 책을 조심해서 보는지 신경을 곤두세우는 건 영 내키지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모든 책을 샘플 진열해서 책의 훼손은 딱 한 권으로 최소화하고, 같은 책을 여러 권 입고해 책을 고르면 새 책으로 꺼내드린다. 그러자 손님들이 실수로 책을 떨어뜨리거나 아이들이 함부로 책을 봐도 내가 아무 스트레스도 받지 않고 심지어 웃으면서 편하게 보시라고 얘기할 수 있었다. 고의가 아닌 이상 책이 좀 망가졌다고 해서 너무 속상해하거나 손님들이 필요 이상으로 미안해하는 걸 보지 않아도 되니 마음이 편하기도 하다.

사실 입고된 책들은 내가 한 권씩 구매하는 셈이니 일종의 고육지책이긴 하지만 오죽하면 그러겠는가. 그나마 이건 우리가 책의 종수를 제한하는 작은 서점이니 가능한 방법이다. 이런 샘플 책의 개념은 다른 동네 서점에선 시도하기 어려운 부분이므로 자칫 오해가 생길 수 있어 서점 손님들에게 진열 책들이 샘플임을 적극적으로 밝히진 않는다. 샘플 책이니 마음대로 훼손해도 된다는 뜻이 절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니 작은 동네 서점에서 책을 볼 때는 항상 내가 아니더라도 그 누군가가 구매할 수 있게끔 서점 주인들의 자산인 책들을 좀 더 소중하게 다뤄주시길 부탁드린다. <권희진 디어마이블루 서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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