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헤리티지 라이브러리] 우리 섬의 가치

[제주 헤리티지 라이브러리] 우리 섬의 가치
  • 입력 : 2021. 04.09(금) 00:00
  • 문미숙 기자 ms@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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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키우던 황무지 섬에서
살기좋은 보물섬 된 제주
잘 닦고 소중히 할 의무 있어

정말 가난했던 섬. 논은 섬 서, 북쪽 고산, 한림, 무릉 해안가에 손바닥만큼 있고 동, 남쪽에는 보리가 겨우 자랐던 섬. 동, 남쪽 사람들은 쌀밥은 구경도 못하고 풀기 없는 보리쌀에 고구마를 깍두기처럼 썰어 넣어 끼니를 때웠던 섬.

적도에서 필리핀 동쪽을 끼고 남중국해를 거쳐 올라오는 쿠로시오 난류 끝자락 길목에 있는 섬. 그래서 아열대 해양성 기후를 갖고 있는 섬. 성산포를 지나가는 물길은 동해로, 모슬포 바닷물은 서해로 가는 물길이 나뉘는 섬.

그 물길에 휩쓸려 올라온 자리돔들이 헤엄치는 섬. 고향 떠난 사람들이 꿈속에서도 입맛을 다시는 자리물회, 자리젓의 고향.

섬을 휘도는 거친 바닷물 속에서 우리 어머니들이 구쟁기, 전복을 따던 섬. 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해녀들의 섬. 아낙네들이 고되고 힘들게 살아도 고부갈등이 없었던 섬.

조선 시대에 농사가 잘 되는 대정현과 농사가 어려운 정의현으로 행정구역이 나뉘었던 섬. 대정현에는 암갈색, 정의현에는 검은색 토양이 많아 색만 봐도 대정현인지 정의현인지 짐작이 가던 섬.

지역마다 제사풍습이 달랐던 섬. 토양이 비옥한 대정현에는 형제가 나누어 제사를 지내는 분짓거리가 많고, 토양이 척박한 정의현에는 장남만 제사를 지냈던 섬. 그래서 토양 색만 봐도 조상들의 제사풍습을 알 수 있는 섬.

고인돌과 유적지가 발견되는 지역도 뚜렷하게 구별되는 섬. 도련, 삼양, 광령, 고내, 옹포, 하모 등 암갈색 토양이 있는 대정현에서만 고인돌이 발견되는 섬. 고산 등에서는 지금도 5천 년 전 적갈색의 압인점열(押印點列) 토기가 발견되는 섬.

산 사람보다 조상의 제사를 더 중요하게 생각했던 섬. 그래서 명절에는 못 가도 벌초할 때는 절대로 빠지면 안 되는 섬. 밭 가운데 묘가 있는 섬. 제사를 지내달라면서 밭을 유산으로 물려주던 섬.

씨를 파종하는 방법도 달랐던 섬. 암갈색 토양의 대정현에서는 고랑, 이랑을 만들어 씨를 파종하고, 검은 토양의 정의현에서는 고랑, 이랑을 만들어 파종하면 농사가 안 되었던 섬.

고구려 주몽, 가야 김수로, 신라 박혁거세, 석탈해 시조 신화가 모두 알에서 태어났지만, 유일하게 삼성혈의 지중용출 시조 신화를 갖고 있는 섬.

추사 김정희가 대정현에 유배 왔을 때 책을 구해다 준 제자에게 답례로 추운 겨울 같은 자기의 속마음을 길이 14m 종이 위에 그려준 국보 180호 세한도(歲寒圖)의 배경이 된 섬. 4·3 항쟁의 슬픈 아픔을 갖고 있는 섬.

그 섬에 60여 년 전 감귤이 재배되기 시작했다. 40여 년 전에는 서광리 황무지에 녹차가 재배되기 시작했다. 섬이 기지개를 펴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말이나 키우는 황무지라고 불렀던 섬이 사람이 가장 살기좋은 보물섬이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흙 속에 묻혀 있던 보물은 잘 닦고 소중하게 다뤄야 한다. 제주 섬 후손들의 의무다.

<현해남 제주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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