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년 전 신석기혁명이 일어날 무렵 세계 인구는 약 400만명이었다. 그런데 5000여 년이 지난 뒤에도 인구는 500만명에 그쳤다. 바로 감염병 때문이다. 농경과 목축으로 인한 정착 생활로 수렵채집을 하던 구석기시대보다 두 배 이상의 자식을 낳았지만 주기적인 감염병 대유행은 인구 증가를 원점으로 돌릴 만큼 강력했다.
신경인류학자 박한선, 인지종교학자 구형찬은 코로나19 시대에 감염병의 기억을 몸에 새기고 살아온 인류의 역사를 돌아보며 그 '과거'에서 우리의 방향을 찾고 있다. '균은 어떻게 인류를 변화시켜왔나'란 부제를 달고 나온 '감염병 인류'다.
독자들에게 말하듯이 써 내려간 '감염병 인류'는 감염병의 탄생과 기나긴 진화사를 시작으로 감염병에 대한 사회문화적 공포가 부른 금기와 관습까지 다뤘다. 사회적 거리두기의 인류사와 뉴노멀 시대도 조망했다.
이들이 장구한 감염병의 역사에서 주목한 건 마음의 면역계라고 할 수 있는 행동면역이다. 감염 가능성이 있는 대상을 미리 피하는 행동으로 높은 수준의 정서, 인지, 행동 체계를 가진 인간은 이 같은 행동면역체계가 고도로 발달하기 딱 좋은 조건이다. 행동면역체계는 사회적 낙인과 편견으로 이어진다. 병자에 대한 혐오는 물론이고 기형이 있는 사람, 피부에 모반이 있는 사람, 심지어 뚱뚱한 사람도 탐탁해하지 않는다.
저자들은 외국인 혐오, 장애인에 대한 편견, 성에 관한 사회문화적 논란, 국가와 민족 간의 갈등이 전혀 다른 원인을 가진 별개의 사회적 현상이 아니라고 봤다. 그 근원을 쫓아가면 하나의 진화적 기원에 도달한다. 병원체와의 치열한 경쟁을 통해 공고하게 진화한 행동면역체계다.
행동면역체계의 과활성화에 대한 알레르기를 해결하기 위해 원시의 삶으로 돌아갈 순 없다. 지금 여기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재난상황에 대한 최소한의 에티켓을 갖추면서 인간에 대한 더 투명하고 정직한 이해를 공유하려는 노력이다. 창비. 2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