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장에 놓인 작품은 단 하나였다. 앞서 도착해 있던 관람객은 벽에 낮게 걸린 그림과 의자가 빚어내는 어떤 풍경을 응시하고 있었다. 갤러리에 들어선 뒤 '리턴'이란 전시 제목을 마주하고 바로 방향을 틀면 그 작품이 보인다. 제주 갤러리2 중선농원(제주시 영평길 269)에서 지난달 11일부터 전시되고 있는 진 마이어슨의 설치 작품 '시퀀스 2'(2021)다.
바깥엔 빗줄기가 끊길 듯 끊길 듯 이어지고 있었지만 채광이 되는 갤러리 안은 훤했다. 벽면의 그림 속엔 거친 파도가 일렁인다. 그 앞에 구겨진 물돛으로 덮인 낡은 나무 의자가 있다. 런던 빅토리아 미로 갤러리의 시니어 디렉터인 맷 케리-윌리엄즈가 쓴 평문에 따르면 이 작품은 북한의 목선으로 추정되는 배들이 일본 니가타현 사도섬으로 떠밀려 온 것에서 영감을 받은 거라고 했다.
우리나라 맨 남쪽의 갤러리에서 북의 '유령선'을 통해 냉전의 영향으로 남북이 갈린 한반도의 현실, 일본 등 주변국과 복잡하게 얽힌 정치적 지형과 마주하게 되는 이 작품은 진 마이어슨의 전작 '노 디렉션 홈(No Direction Home )'의 자장 안에 있다. 다섯 살 때 미국인 부부에게 입양돼 그곳에서 성장한 작가의 개인사가 겹쳐 읽히기 때문이다.
갤러리에서 작가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제공하는 QR 코드 전시 설명문에 담긴 진 마이어슨의 영상엔 이런 문장이 뜬다. "우리는 유령선을 타고 해변으로 떠밀려 왔다. 우리가 태어난 땅 위에서 그 관습과 언어로 인해 혼란스럽다. 우리는 섬에 있는 외딴 섬이다." 그래서 '시퀀스 2'는 "기억의 난민"이라는 입양아 출신 작가가 자신도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는 과거에 띄우는 편지이자 그럼에도 나아갈 수 밖에 없는 생에 대한 전언으로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