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의 일류도시에 대한 열망 즉 특별시가 되지 못하는 콤플렉스는 지역의 역사와 그 안의 고유한 가치를 인지할 수 없게 하는 장애물이며 도시의 주민이 이 도시의 무엇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지 돌아보지 않는다." 오석근 작가가 바라본 2018년 인천의 모습이었다. '인천'이 있는 자리에 '제주'를 대입해봐도 어색하지 않다. 어디에나 있는 도시의 얼굴을 따라가느라 바쁜 사정은 이곳도 다르지 않아서다.
제주시 한경면 저지문화예술인마을에 있는 북갤러리 파파사이트가 제주는 물론 제주와 유사한 고민을 안고 있는 지역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사진으로 기록한 작업과 마주하며 지금, 여기의 제주를 살피고 최선의 답을 찾아보는 시간을 갖는다. 6월부터 11월까지 이어지는 '집과 기록: 인류세의 집' 프로젝트다.
인류세는 20만 년 전 등장한 인류가 화산 폭발, 빙하기와 맞먹을 정도로 큰 힘을 가지게 되었음을 경고하기 위해 생겨난 말이다. 인류가 이 땅을 망칠 수 있는 막강한 위력을 지닌 만큼 우리 스스로의 돌아봄을 통해 그 위기를 건너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제주 역시 현재 걸어가고 있는 이 길이 맞는지 살펴야 할 이들은 바로 우리다.
'집과 기록'에서는 5개월 동안 다섯 개의 주제로 집에 얽힌 사연을 나눈다. 이 기간에는 다섯 차례의 포토그래피 토크와 여덟 편의 다큐멘터리 상영이 예정됐다.

권도연의 '북한산' 중 '검은 입'.
토크 참여 작가와 주제는 인천을 배경으로 둔 오석근의 '신흥동 일곱 주택'(6월 11일), 도시 재개발로 버려진 개들의 경로를 관찰한 권도연의 '북한산'(6월 18일), 아프리카와 아시아 난민들의 여정에 동행한 조진섭의 '떠나온 자들'(7월 16일), 제주에서 사라지는 신당들을 담은 강건의 '소박한 성소'(9월 3일), 제주에서 오래된 집을 고쳐 정착하기까지 과정을 소개한 브랜다 백 선우의 '나의 제주 돌집'(10월 15일)이다. 이들 관객과의 대화는 매회 오후 7시30분부터 시작된다. 첫 회에는 제주의 탐라지예건축사사무소 권정우 소장도 함께한다. 사진 주제와 닿는 다큐멘터리 상영작은 황폐한 도시에서 인간과 동물이 공생하는 길을 생각해 볼 수 있는 '동물,원', 4대강 사업으로 수몰된 마을 사람의 일상을 촬영한 '기프실', 집을 떠나 국경을 넘어 떠돌아다니는 사람들의 삶이 펼쳐지는 '경계', 33년 동안 가난이 대물림되는 한 가족의 연대기 '사당동 더하기 33', 빼앗긴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각자의 방식으로 저항하는 팔레스타인 가족이 나오는 '올 리브 올리브' 등을 준비했다.
이 프로젝트를 기획한 홍영주 프로그래머는 "'집'의 이야기를 통해 제주가 직면한 개발, 환경, 부동산, 기후위기 이슈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성찰할 수 있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며 "개발로 지워지고 사라지는 존재들을 향해 집의 지평을 1cm라도 넓히는 가능성을 위해 다섯 작가를 일일이 찾아가 프로젝트의 지향점을 공유하고 섭외했다"고 밝혔다.
참가비 무료. 사전 예약제로 운영된다. 파파사이트의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papasitejeju), 휴대전화 문자(010-2717-5821)를 이용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