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동백에 뛰고 있는 제주 섬 사람들의 심장

저 동백에 뛰고 있는 제주 섬 사람들의 심장
전영실 개인전 '동백이 피기까지는' 8월 30~9월 6일 심헌갤러리
섬세하거나 거친 선으로 표현된 심장에 광폭한 시절 견뎌온 나날
  • 입력 : 2021. 08.25(수) 10:35
  • 진선희기자 sunny@ihalla.com
  • 글자크기
  • 글자크기

전영실의 '동백이 피기까지는 5'

20대 후반 어느 날의 기억에서 그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미술교사로 재직하며 학교 미술실에서 풍경을 그리고 있던 그는 "더 이상 이 짓은 못하겠어"라며 붓을 던져 버렸다. 아이들에게 그리는 방법을 가르칠 순 있었지만 자신이 그림을 그려야 할 이유는 찾지 못했다. 그리고선 작업을 멈췄다.

그림을 다시 시작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풍경이 '나'이고 '나'가 '풍경'임을 아는 데까지 걸린 세월이었다. 2019년 '오늘 잘 놀았어'란 주제로 59세에 첫 개인전을 열었던 전영실 작가다. 제주대 미술교육과를 졸업했고 지금은 제주명상예술공동체 대표로 있는 그가 대상과 마음이 하나된 작품들로 세 번째 개인전을 갖는다.

이번 개인전은 '동백이 피기까지는'이란 이름을 달았다. 노모가 있는 요양원을 오가며 깨달은 삶의 순간을 첫 개인전에 담아냈듯, 이번에도 제주의 바람이 싫다며 고향을 부러 등졌던 미안한 마음에 차마 제주4·3을 화폭에 꺼내놓지 못했던 작가가 땅 위에 떨어진 동백을 한아름 안고 작업실에 와서 보고 또 보며 얻은 생각들로 태어났다.

전영실의 '바락바락꽃'

그가 아기 동백꽃에서 발견한 건 제주 사람들의 심장이었다. 붉은 심장, 푸른 심장, 춤추는 심장, 아픈 심장, 꽃 피는 심장 등 광폭한 시절을 견뎌온 우리들의 지난 날이 동백의 심장처럼 뛰고 있었다.

작가는 그 감정들을 다양한 선으로 표현했다. 부드럽고 섬세하게, 자유롭고 거침없이, 때로는 머뭇머뭇 망설이면서 그려진 선들은 이 땅에 살아온 이들의 모습을 상징한다. 특히 일제 수탈에 맞선 제주해녀항쟁으로 옥고를 치렀던 인물을 다룬 허영선의 시 '해녀 김옥련'을 읽은 뒤 그려낸 '바락바락꽃' 같은 작품에선 주먹을 쥔 손으로 밀고 나가는 선을 사용하며 우리가 잊고 있었던 심장을 형상화했다. '2021년 61세 화가'는 '1931년 22살 해녀 김옥련'에게 또 다른 '해녀의 심장'을 그려 바쳤다.

전 작가는 "동백꽃으로 보일 때는 그저 그렇게 그려졌는데 붉은 심장으로 변한 순간 손이 저절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동백과 나는 따로 있지 않았다"는 말로 이들 작업의 배경을 밝혔다. 전시는 이달 30일부터 9월 6일까지 심헌갤러리.
  • 글자크기
  • 글자크기
  • 홈
  • 메일
  • 스크랩
  • 프린트
  • 리스트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기사에 대한 독자 의견 (0 개)
이         름 이   메   일
8121 왼쪽숫자 입력(스팸체크) 비밀번호 삭제시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