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제주 마을탐방] (8)제주시 조천읍 선흘2리

[2021 제주 마을탐방] (8)제주시 조천읍 선흘2리
땅 속의 동굴과 땅 위의 곶자왈을 낳은 마을
  • 입력 : 2021. 11.08(월) 00:00
  • 김도영 기자 doyoung@ihalla.com
  • 글자크기
  • 글자크기
세계자연유산 오름·동굴 황홀한 생태계 보고
곶자왈 숨골 등 놀라운 지형·식생 세계적 가치
개척 마을 조성 당시 흔적 '테시폰’ 고스란히
이주 열풍 전부터 ‘살기 좋은 곳’ 소문난 마을


누구나 알다시피 제주도는 화산섬이다.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이 솟은 한라산과 더불어 360여 개에 이르는 오름이라는 화산체가 연산연봉 굽이친다. 뜨겁게 들끓어 올랐던 마그마의 자취는 화산체만이 아니다. 산과 들, 그리고 바다에 이르기까지 기묘한 형상으로 변상증을 일으키는 바위부터 발길에 치이는 조그만 돌멩이 또한 냉각된 마그마의 결정이다. 이뿐인가. 무엇보다 이 섬의 자랑인 맑고 시원한 물, 어쩌면 제주섬의 혈류인 지하수와 용천수도 마그마의 궤적이 낳은 결과물이다. 마그마의 궤적은 우리의 눈에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가. 두말할 필요 없이 동굴이다. 마그마의 맥박과 호흡이 낳은 영겁의 결과물 중 하나인 오름과 동굴을 동시에 품고 있는 마을이 바로 선흘2리다. '거문오름 용암동굴계'라는 이름으로 이 마을의 오름과 동굴은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자연유산이 됐다. 세계자연유산본부가 자리한 이 마을은 어떤 이력을 품고 있을까?

세계자연유산 거문오름의 전경

용암이 오름과 동굴을 낳고 그곳을 터전 삼은 숲과 습지, 그리고 만생명이 뿌리내리는 수만 년의 세월이 흐른 뒤에 사람이 찾아들었다. 이 황홀한 자연 속에 보금자리를 일군 첫 사람들은 누구일까? 기록상의 선흘2리는 18세기 자료인 '탐라방영총람' 등에서 찾을 수 있는데 '상선흘리'라는 명칭으로 등장한다. 구전으로는 대략 360여 년 전 김해 김 씨, 문 씨, 허 씨, 안 씨, 정 씨 등이 정주하면서 본격적인 마을이 생겨났다고 한다. 일제강점기에 이르러 선흘리가 1구와 2구로 나눠지며 오늘날의 선흘2리로 이어졌다. 애초의 선흘2리에는 자연마을이 여럿 있었다. 현재는 1, 2차 양잠단지에서 비롯된 선진동과 중앙동의 본동, 우진동, 선인동 등으로 나뉘지만 과거에는 곱은달이, 곱은장으로 불리던 곡장동, 벡케굴왓 또는 엉또라고 불리던 벽화동 등이 있었다고 한다. 1970년대에 양잠단지가 들어서는 개척마을을 시작으로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었고 1999년 토지분할이 완료되면서 현재의 기틀이 잡히게 됐다. 지금도 개척 마을이 만들어질 당시에 지어진 개척 농가인 테시폰이 알밤오름자락에 남아있다. 알다시피 테시폰은 아랍의 전통건축에서 모티프를 얻어서 개발한 건축물로 아일랜드의 제임스 월러가 고안한 것이다. 선흘2리를 비롯한 제주의 테시폰은 임 파트리치오 신부의 주도로 보급됐다고 한다. 이렇게 개척 농가 테시폰을 지으며 젊은 농부들이 선흘2리에 정착한 이래 현재 354세대가 거주하고 있으며 인구 749명 남짓 되는 큰마을로 성장하기에 이르렀다.

마을 안을 수놓은 도라지밭

세계자연유산센터

그 옛날 제주에 열 곳의 국영 목마장이 설치되고 이 마을에 2소장이 들어설 당시 사람들이 머물기 시작해 개척 마을 시기를 거쳐 오늘에 이르는 동안 많은 사연들이 명멸했다. 2000년대 제주 이주 러시가 한창 물오르기 전부터 화가, 음악가, 문인 등이 알음알음 모여들어 살기 좋은 곳으로 소문이 났다. 그 뒤로 많은 이주민들이 정착해 토박이보다 다른 곳에서 모여든 이들이 많은 젊은 마을이기도 하다. 농업에 종사하는 이들은 해발고도가 높다 보니 제주에 허다한 감귤 농사보다는 도라지, 더덕, 콩 등을 재배한다.

제주도는 비경으로 가득 찬 곳이어서 모든 곳이 아름답지만 선흘2리에는 다른 곳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동굴을 품은 화산체 거문오름이 있다. 거문오름은 해발 456.6m 비고 112m의 높이에 말굽형의 분화구를 지니고 있다. 지난 2005년 천연기념물 제444호로 지정됐고 2007년에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됐다. 곶자왈과 숨골, 수직동굴을 비롯한 놀라운 지형과 식생을 자랑하는 이 오름에는 옛사람들이 민속생활사를 엿볼 수 있는 숯굴(숯가마)이 있는가 하면 식민지 시대 결7호 작전의 결과물 중 하나인 진지동굴이 분화구 안에 여섯 곳이나 만들어져 있다. 이 진지동굴에는 일본군 108여단 사령부가 주둔했었다고 한다. 무엇보다 거문오름은 용암이 분출하면서 해안까지 이르는 사이 뱅듸굴, 웃산전굴, 북오름굴, 만장굴, 김녕굴, 용천굴, 당처물동굴 등 수많은 동굴군을 만들어낸 것으로 유명하다. 거문오름뿐만 아니라 알밤오름, 웃밤오름, 우진제비오름, 민오름, 부소오름, 부대오름 등 많은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오름들과 멍중내 등의 하천이 있어서 비경에 한몫을 더한다. 또한 2012년에는 세계자연유산센터가 개관돼 선흘2리는 물론 제주도의 자연경관 전반에 걸친 사항을 집대성하며 세계적 가치를 조명하고 있다.

알밤오름 자락의 테시폰

함덕초등학교 선인분교의 아름다운 교정

이처럼 아름다운 경관과 생태적 가치를 자랑하는 마을이지만 선흘2리는 2000년대 들어 급속하게 진행되는 난개발의 위기에 봉착해 있다. 이미 수년째 도민사회의 관심사 중 하나가 된 동물테마파크 사업이 대표적인 예이다. 동물테마파크를 추진하는 기업과 선흘2리의 갈등은 2018년부터 본격화됐고 근래에는 마을 이장이 교체되는 등 마을공동체 내부까지 깊숙이 파고들었다. 이상영 이장에 따르면 동물테마파크사업은 여전히 진행 중인 사안이며 여전히 마을과 기업 간의 분쟁이 이어지고 있다. 동물테마파크사업 외에도 환경문제와 관련한 사안은 여러 가지다. 폐기물 재활용 공장 등을 비롯한 각종 공장시설들이 마을 외곽에 여러 곳이 있는데 오염된 공기가 마을 안까지 밀려오는 날이 잦은 것도 상당한 골칫덩어리라고 이상영 이장은 전한다. 세계자연유산마을이라는 타이틀이 무색하다며 쓴웃음을 짓는 그의 표정에 수심이 깊다.

"어쩌다 이장직을 맡게 되고 보니 골치 아픈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크고 작은 개발사업 때문에 마을이 몸살을 앓고 있어서 동분서주하면서 해결책을 찾아다녀요. 그렇다고 희망적인 일을 뒷전으로 미루는 것도 아니에요. 세계자연유산센터 내에 있는 마을기업을 정상화시키는 일에도 부심하고 있어요. 마을의 내력은 깊지만 근래에는 대다수가 이주민이어서 마을공동체의 결속력을 다지는 일도 고민하고 있어요. 최근에는 CI 만들기 사업, 마을 로고 만들기 사업도 추진하고 있어요."

이상영 선흘2리 이장

이상영 이장의 말처럼 선흘2리는 절망과 희망이 교차하는 기로에 서 있다. 어쩌면 2000년대 들어서서 제주가 겪는 모든 고락을 압축해놓은 곳이 아닌가 생각이 들게 만든다. 환경파괴로 인한 기후위기의 티핑포인트에 내몰린 오늘날 전인류적 문제가 세계자연유산마을에서도 묵직한 체증처럼 잠복한 것을 보게 되는 이즈막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한 미소를 잃지 않으려는 이상영 이장의 표정과 리사무소와 어깨를 맞댄 선인분교 운동장에 감도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겹쳐진다. 이들의 웃음이 이 마을의 활력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글·사진=한진오(극작가)
  • 글자크기
  • 글자크기
  • 홈
  • 메일
  • 스크랩
  • 프린트
  • 리스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밴드
기사에 대한 독자 의견 (0 개)
이         름 이   메   일
5161 왼쪽숫자 입력(스팸체크) 비밀번호 삭제시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