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상지(91) 할아버지가 9일 4.3트라우마센터에서 열린 자신의 그림전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이상국기자.
살아남은 아이는 여든이 돼서야 참혹한 제주4·3의 기억을 기록하기로 결심했다. 연을 날리던 평화로운 노형 개진이 마을부터 군·경에 의해 불 질러진 마을, 총·칼에 살해 당하는 가족과 마을 사람들, 엄동설한 처참했던 한라산 피난 생활, 난리가 끝나 희생된 가족 8명에게 올린 눈물의 제사상까지 당신 손으로 직접 그려내기로 한 것이다. 살아남은 아이가 '4·3의 역사'에 들어가는 순간이다.
4·3트라우마센터는 9일 현상지(91) 할아버지의 '4·3 기억 그림전-청산이도의 기억'을 개최했다.
현 할아버지는 1948년 11월 불 타는 고향마을을 등지고 해안마을 이호리로 강제 소개된 후 같은해 12월 6일 큰형을 비롯해 마을사람들이 집단학살되는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했다. 이후 청산이도(작은 두레왓 이근) 등 한라산 피난 생활에서는 할아버지와 아버지, 남동생, 조카 2명이 토벌대 철창에 맞아 유혈이 낭자한 모습까지 목도했다. 4·3 과정에서 그는 가족 10명 중 자신과 어머니를 제외한 8명을 잃었다.
현상지 할아버지가 자신이 그린 그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상국기자
그는 여든 줄에 들어선 10년 전 그림을 그리기로 결심했다. 4·3을 입 밖으로도 꺼내선 안되는 침묵의 세월을 겪었지만, 머릿 속에 남아 있는 기억은 흐릿해지는 것이 아닌 더욱 더 선명해졌기 때문이다.
"수 십년이 지났는데도 기억이 지워지기는커녕 더 생생히 떠올라 날 괴롭혔어요. 머릿 속으로만 괴로워하지 말고 그림으로 한 번 그려보자고 시작한 게 여기까지 왔습니다. 숨긴다고 숨길 수 있는 일이 아니었던 겁니다."
현 할아버지는 10년 동안 수 없는 그림을 그려냈지만, 아직 그려내지 못한 기억이 많다고 한다.
"그리지 못한 기억이 많이 남았는데, 내 손이 움직이는 한 계속 그림을 그리고 싶습니다. 하지만 청산이도 피난 생활 등 생각만 해도 끔찍한 기억은 차마 그릴 수가 없겠어요."
그는 이날 그림전으로 마음의 짐을 조금이나마 덜었다고 말했다. 수 십년 동안 자신을 괴롭혔던 트라우마가 창작활동을 통해 비로소 '치유와 정화의 과정'에 돌입했다는 것이다.
"이제 마음이 좀 편안해졌습니다. 배운 것 없이 자랐지만 살아서 눈으로 본 것, 귀로 들었던 것을 기록으로 남길 수 있으니까 말이에요. 부디 나라에서도 숨기려고만 하지말고 4·3의 진상을 명백히 밝혀줬으면 좋겠습니다. 그게 선진국 아닌가요?"
현상지 할아버지가 그린 1948년 12월 13일 토벌대에 의해 자행된 집단학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