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빈 대학교로 자리를 옮긴 윤 박사와는 독일 본 대학교에서 처음 만났는데 작년에 제주 다녀가면서 새겨두고 싶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한국의 예술인들을 만나면 빈에 사니까 좋겠다는 말을 자주 한다는 것이다. 어디에 사느냐에 의해 인생살이가 달라지기도 하지만 우리가 살고 싶다고 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어딘가에 사는 것에 이유가 다 같을 수도 없지 않느냐고 그녀는 반문했다. 덧붙여 제주에 오면 눈앞에 있는 대지와 바다에 떨어지는 빛의 실체를 느끼는 것이 가장 우선이라고 했다. 인간의 모든 삶터엔 그곳의 영혼과 숙명이 있고, 인생의 고갱이가 어떻게 흐르는지 우리는 짐작이 가는 나이라고.
그녀는 대산문학상(번역 부문)을 받기도 한 한국문학 번역가이다. 한국에 들어와 2주간 호텔에서 자가격리를 마치고 단 사흘 볼일을 보고 곧바로 귀국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시간이 없었고, 그녀가 카페에 들어가는 것도 꺼려해 한라수목원에서 만나 마스크를 쓴 채 벤치에 앉아 해후를 했다. 주로 본 대학교에서의 추억을 꺼내 키득거렸다. 나는 베를린 문학콜로키움 레지던스의 일환으로 본 대학교에서 특강과 시낭독회를 가진 바 있고, 본 대학교 측으로부터 연구교수 제안을 받아 일이 년 본에 있을 계획이었다.
본은 독일의 옛 수도이다. 사실 나는 옛 궁전 건물인 본 대학교 캠퍼스의 아름다움에 홀딱 빠져 연구교수 제안을 수락했다. 당시 한국어학과엔 후버 교수가 주임으로, 이민자인 윤 박사가 조교수로 재직하고 있었다. 나는 후버 교수의 초청으로 구 동독지역에 있는 그의 고향마을을 방문해 그가 은퇴 후에 살 말목장이 딸린 집을 구경하기도 했다. 그는 내가 뭐 좀 안다는 식의 앙뉘하면서도 불편함을 주는 사람들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지식인이었다.
학기가 시작되기 전 어느 날 교수식당에서 후버 교수와 밥을 먹다 발개진 얼굴로 난색을 표하며 내가 말했다. 유감스럽게도, 이런 식단으로 1년 동안 밥 먹을 자신이 전혀 없노라고. 그러자 후버 교수가 놀라며 물었다. "아니, 당신은 제주 섬에서 살잖아?" 내가 말했다. "이 친구, 그 섬이 차려주는 밥상을 알지도 못하면서!" 그리고 제주엔 제주막걸리로 종종 끼니를 때우는 행운이 있지만 여기서 와인이나 생맥주로 밥을 대신할 수 없다고도 했다. 우스갯소리 같지만 실제 나는 제주막걸리가 먹고 싶어 점심때나 저녁때를 기다린 적이 많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후버 교수와 내가 공동으로 연구하고자 의기투합했던 것은 말과 연관된 문학작품에 관한 연구였다. 서로 말에 대한 남다른 애정이 있고, 말에 대해 뭔가 쓰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내가 지금 거실에서 이웃집 말들을 보고 있을 때 은퇴한 후버 교수도 지금쯤 고향 마을 고택을 수리한 집에서 말들을 보고 있을 것이다. 언젠가 그가 전화해서 내게 물었다. 제주에 정착한 지 꽤 됐는데 과연 말에 관한 책은 출간됐느냐고.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