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 문봉순 글, 박정근 사진 '은퇴 해녀의 불면증'

[이 책] 문봉순 글, 박정근 사진 '은퇴 해녀의 불면증'
"해녀라고 못 했던 시절 지났지만…"
  • 입력 : 2022. 02.04(금) 00:00
  •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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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쪽마을 해녀 생애사 기록
"당신들 덕택에 지금 우리가"

온평리 바다밭 이름도 담아


"옛날에는 어디 가서 해녀라고 말도 못 했다. 그때는 얼굴에 화장도 안 하고 하면 해녀들은 얼굴이 새카맸다. 선크림도 안 바르고 아무것도 안 바르고 다니던 시절이다. 그렇게 하다가 한 15년 전부터 화장을 하기 시작했다." "요즘에는 세계적으로 해녀라면 알아주니까 살맛이 난다"는 1950년생 해녀는 지난날을 떠올리며 이런 말을 꺼냈다. 그는 "앞으로 남은 시간은 나의 인생을 살 것"이라는 마지막 바람을 털어놨다.

경남 진주에 머물다 굿 공부를 위해 제주에 정착한 문봉순 제주섬문화연구소 연구실장의 '은퇴 해녀의 불면증'은 물질을 통해 가정을 일구고 제주 경제를 일으킨 해녀들의 목소리를 담고 있다. 표제는 가족을 위해 온 생을 물질로 채웠지만 결국 불면증이라는 고통만 남은 어느 해녀의 억울한 사연을 표현한 말이다. 그처럼 좋은 세상을 누리지 못하는 해녀들을 위해 저자는 "당신들의 덕택으로 지금 우리가 이만큼 살게 되었다는 보람을 찾아주고 싶어" 2019~2020년에 진행했던 해녀들의 인터뷰를 1인칭 시점을 위주로 정리해 실었다.

이 책에 생애사가 기록된 해녀는 제주 동쪽 마을을 중심으로 19명에 이른다. "이젠 물질 안 해도 살았지만 그땐 물질 안 하면 돈 나올 것이 없었"던 시대를 건너온 제주의 여성들이다. 대부분 우도에서 태어나 70년 이상을 그 섬에서 살고 있는 해녀 11명은 '우도 직녀가'란 이름으로 묶었다. 우도의 시간과 공간을 직조하며 자식의 성공과 가족의 행복, 오늘보다 나은 내일에 대한 희망으로 버텨온 신산한 삶이 그곳에 있다. 구좌, 조천 지역의 해녀 8명은 '바다에 바친 삶과 신앙'으로 소개했다. 바다라는 예측할 수 없는 자연 앞에서 풍요와 무사안녕을 기원하고, 바다에서 생을 마친 고혼들까지 잊지 않고 위로해주는 등 일상이 신앙과 연결된 해녀들의 삶을 만날 수 있다.

말미에는 '해녀보다 빨리 늙는 바다'란 제목으로 '온평리 바다밭 이야기'를 실었다. 겡이여, 눌여깍, 배끄러여, 홀어멍돌, 관할망여, 용머리여, 거욱게빌레, 물잔지미 등 해녀들이 몸으로 먼저 기억하는 제주어 지명이 펼쳐진다. 그사이 변해 버린 바다에 대한 온평리 해녀들의 탄식 너머에 언젠가 그 이름마저 사라질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밀려든다.

사진은 박정근 작가가 맡았다. "바다가 없는 내륙의 깊은 산골에서 나고 자란" 박 사진가는 "밀물지는 파도에 이끌리듯 제주섬으로 들어와 카메라를 든 지 10년이 다 되어간다"는 이다. 한그루. 2만원. 진선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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