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5년 전부터 고양이들과 함께 살고 있다. 두 마리의 유기묘들에게 옥희와 덕희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내 공간 안에서 함께 살게 된 것은 5년 전부터이지만 아마도 나는 이 땅에 태어나면서부터 이름을 모르던 수많은 고양이들과 함께 살아왔을 것이다. 물론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고양이들은 존재해왔고 나는 어쩌면 그들이 이미 살고 있던 공간 위에 새로 찾아온 그저 한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떤 생명체와 함께 살고 있다는 실재하는 감각은 불현듯 찾아와 오래 머무른다. 호기심이 관심이 되고 관심이 애정이 되고 애정이 책임이 되며 그 책임이 나머지 모든 감정들을 지탱하는 '경험'이야말로 공존이라는 말의 뜻풀이가 아닐까.
'고양이를 부탁해', '말하는 건축가'를 연출한 정재은 감독의 다큐멘터리 '고양이들의 아파트'는 거대한 아파트 단지가 재개발의 상황에 처한 뒤 살던 곳을 떠나야 하는 고양이들과 그들의 이주를 돕기 위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아파트는 인간들이 살기 위해 만들어진 공간이지만 아파트를 둘러싸고 있는 단지는 인간들만이 사는 곳은 아니다. 인간들이 집이라는 공간 안으로 들어간 뒤 아파트 단지의 곳곳은 고양이들의 서식처가 된다. 아파트라는 건축물이 들어서기 전부터 그 공간은 이미 그들의 안식처였을 것임은 물론이다. 집이라는 공간의 밖으로 나온 인간들이 고양이들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그 공간은 고양이와 인간이 함께하는 공존의 영역이 될 수 있다. 둔촌주공아파트 단지라는 공간이 바로 그런 시공간이었다.
한때는 무려 6000세대가 함께 살고 있던 이 대규모 아파트 단지는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사라져 버렸다. 인간들에게 재개발은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과정일 수 있고 아쉬움 또한 추억으로 남길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고양이들에게 라면 사정은 달라진다. 고양이들에게 재개발은 재난 상황이다. 함께했던 인간들이 어느 순간 모두 사라졌다는 궁금증과 그리움이 심정적 재난이라면 허물어지는 건축물에 깔려 죽음에 직면할지도 모를 위험천만한 상황은 실재적 재난이다. '고양이들의 아파트' 속에는 함께 살기 위해 고양이들의 끼니를 챙기고 안위를 걱정하며 시간과 공간을 나누어 가졌던 이들이 있고 이 거대한 사건의 피해를 입을 수 있는 고양이들의 다음 삶을 위해 기꺼이 프로젝트를 만들고 실행하는 이들이 있다. 어쩌면 무용할 수도 있는 일, 보상이 따르거나 이득이 되지 않는 일들을 기꺼이 행하는 것은 우리가 고양이와 함께 살았음을, 그 소중한 공존의 경험을 잊고 싶지도, 잃고 싶지도 않았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영화는 고양이들의 눈높이로 공간을 탐색하고 인간들의 시선으로 도시생태계의 곳곳을 들여다본다. 그동안 '말하는 건축가', '말하는 건축 시티:홀', '아파트 생태계'라는 다큐멘터리를 연출하며 공공 건축과 도시 생태계에 대한 의미 있는 기록을 남겨온 정재은 감독은 '고양이들의 아파트'를 통해 인간과 인간이 만든 건축물, 그리고 고양이라는 또 다른 생명체에 대한 깊이 있는 시선을 통해 여러 가지 질문들을 관객들에게 남긴다. 우리가 사는 곳의 주인은 누구인가, 함께 산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가, 지속 가능한 도시 생태계는 가능한가 그리고 나의 집이 아닌 우리의 집은 어디인가.
유기묘와 유기견이 반려묘와 반려견이 되는 일은 생명을 구하고 그 생명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인간의 최선인 동시에 점점 더 외롭게 공간 안에서 스스로의 안전에 만전을 기하는 인간들의 공존 욕구에 대한 애착의 행위이기도 하다. 집이라는 공간을 확보하는 일이 삶의 시간을 탐색하는 과정이기 전에 재산과 부의 상징이 되어가고 있는 시점에서 '고양이들의 아파트'는 우리 모두에게 삶의 영역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쉽게 답할 수 없는 문제를 제시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다행스럽게도 이제는 도둑 고양이라는 멸칭 대신 길 고양이로 불리고 있는 고양이들에게 그리고 어느 순간 도시가 되어버린 공간 위에서 살아가고 있는 동물들에게 우리는 우리의 다정함을 생색내면 안 될 것이다. 우리가 그토록 열망하는 집이 바로 그들의 길 위에 세워졌으니 말이다.
<진명현 독립영화 스튜디오 무브먼트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