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주의 문화광장] 변화를 이끄는 예술의 힘

[김연주의 문화광장] 변화를 이끄는 예술의 힘
  • 입력 : 2022. 03.22(화) 00:00
  • 최다훈 기자 orca@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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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한 작가가 들러줬던 이야기가 무척 인상 깊다. 작가는 캔버스를 눕히고 그 위에 매일 얼음을 올려놓는 작품을 전시했다. 매일 전시장에 갈 수 없었기에 작가는 며칠에 한 번 얼음을 얼려 전시장에 가져다 뒀고, 전시장 지킴이가 매일 전시장 문을 열 때 얼음을 캔버스 위에 올려놓았다. 전시 초반 전시장 지킴이는 얼음을 두는 행위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그러나 날마다의 참여가 그를 바꾸어 놓았다. 어느 날 그는 작가에게 매일 얼음을 놓고 캔버스 위에서 얼음이 녹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됐고, 예술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이 생겼다고 말했다. 작가는 이 이야기를 듣고 관람객의 참여를 고민했고, 다음 작업에서 이를 시도했다.

미술 작품이 누군가를 바꿔놓았다는 이야기는 들을 때마다 힘이 된다. 전시기획자로 활동하지만 일에 매몰돼 있다 보면 예술이 지닌 가치를 종종 잊어버리고 낙심하게 되는데, 이런 이야기가 다시 예술 그 자체를 바라보게 한다. 예술은 변화를 이끄는 강력한 매체다. 이것이 독일 신표현주의 화가 요르그 임멘도르프가 예술가의 사회 참여를 강하게 주장했던 이유였을 것이다. 그는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 예술가에게 발언하고 행동하라고 했다. 직접 사회 문제나 이념을 표현할 때는 물론이고, 그렇지 않아도 예술은 충분히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을 지닌다. 제주도는 변화를 이끄는 예술의 힘을 직접 목격했다. 4·3미술은 폭력과 억압에 의해 잊혔던 기억을 되살렸다.

미술은 한순간의 감정을 강하게 흔들어놓기도 하지만, 깊은 생각을 요구하는 지적인 예술이기도 하다. 따라서 관람객이 작품을 보자마자 눈물을 흘리기도 하지만, 천천히 자신을 돌아보며 반성하기도 한다. 이러한 격한 감정과 지적 반성이 행동하게 하는 강한 동기가 된다. 그런데 지적인 감상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작품의 형식을 분석하고 내용을 파악해야 한다. 특히 매체, 형식, 주제의 폭이 넓어진 동시대 미술의 경우 재료, 기법, 내용 등을 단번에 알기 어려운 경우도 많아 관람에 더 긴 시간이 요구된다. 따라서 변화를 이끄는데도 시간이 걸린다. 전시장 지킴이가 2-3일 정도 얼음을 놓고 작품을 봤다면 그의 시각이 바뀌지 않았을 수도 있다. 두 달이 넘는 기간 동안 얼음을 놓고 지켜보았기에 변화가 가능했다.

감각에 의존한 전시가 많아지고 있다. 걱정도 앞서지만 이런 전시가 미술 작품에 더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갖게 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오랜 시간 작품 앞에 머무르는 관람객도 늘어나고, 예술로 인해 사람, 공동체, 사회가 변하길 바란다. 이를 위해 전시 외에 작가와 작품을 소개하는 다양한 플랫폼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자. <김연주 문화공간 양 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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