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정의 하루를 시작하며] 깻잎 한 장

[김문정의 하루를 시작하며] 깻잎 한 장
  • 입력 : 2022. 03.23(수) 00:00
  • 최다훈 기자 orca@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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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아신스가 사라졌다. 가게 밖에 내놓은 배롱나무 아래, 조그만 구근화분을 올려두었다가 도둑맞았다. 뾰족하게 솟고 있던 꽃대가 거짓말처럼 없다. 꽃샘이 남았지만 아직 꽃눈이 작아 햇빛욕심이 났었다. 들여놓아야하나 하다 결국 잃었다. 꽃망울이 선연한데 향기는 아련하다. 자책을 한다. 짬짬이 약이 오른다. 누군지도 모를 상대에게 화가 치민다. 분하다. 어떻게 그럴 수 있지? 훔쳐서 갖다 놓고 눈앞에 두니 좋으신가. 한동안 몇 날을 아쉬워하다 무심해지기로 한다. 비가 오고 나니 가지마다 물이 올라 여기저기 새순이 돋는다. 어린 풀꽃도 정겹다. 그러니 잊기로 한다. 잘 키워 주시라. 봄날은 짧다.

대선이 끝났다. 승패가 0.7%p 차이라니 정말 깻잎 한 장 차이다. 이겨도 져도 아쉬움이 남는 초박빙의 승부. 각자 다른 선택이 있겠지만 나로서는 놀랍다. 매번 당선과 일치되는 투표를 한 것도 아니지만 충격이다. 도리질한다. 헛웃음이 난다. 자책을 한다. 짬짬이 약이 오른다. 누군지도 모를 상대에게 화가 치민다. 분하다. 어떻게 그럴 수 있지? 며칠 밥맛을 잃는다. 우울하고 답답해서 눈물이 난다. 필시 PESD(Post Election Stress Disorder), 선거 후 스트레스장애다. 각자의 욕망으로 투표한다니 나는 무엇을 욕망했는가. 한 표만 허락된 선거. 유권자 한 표의 가치는 약 6787만 원이라는데 내 표는 어디에 있나. 지난 선거기간의 일들이 한꺼번에 지나간다. 잘해 주시라. 5년이 길다.

언제나 그랬듯 새 대통령이 성공하길 빈다. 내 한 표는 당선자 앞에 놓인 반대표지만 뼈아프게, 귀히 여겨주길 바란다. 바라건대 지역 세대 남녀 진영을 가르지 않는 탕평과 정책을, 불합리와 부조리의 청산을, 국익과 자존을 지키는 평화의 대한민국을. 추상적인 아무말잔치의 약속대로라도 선한 결과가 온다면 좋겠다. 희망 있는 공정한 세상, 더 나은 삶은 과연 오는가. 아직도 꿈은 멀고 간 길마저 다시 되돌아가는 건 아닌지. 괜한 불안인가 부질없는 걱정인가. 입 밖으로 내어 말하기 싫은 의문들까지. 머릿속이 어질하고, 멀미나게 피폐해진 하루가 간다.

한때 '깻잎논쟁'이 있었다. 식사자리에서 내 동성친구의 깻잎장아찌를 나의 애인이나 배우자가 떼어주거나 잡아줘도 되는가이다. 사실 시시한 농담거리지만 의외로 의견이 분분해서 아주 뜨거웠다. 논쟁의 중심에는 마음이 있다. 깻잎을 잘 뗄 수 있게 잡아주는 마음, 그 마음에 방점이 찍힌다. 깻잎 한 장에도 마음이 실린다는 것. 얇디얇은 깻잎 한 장 들어내기 위해 잘 훈련된 젓가락질이 필요하다는 것. 따라 올라가는 아래를 잡아주어야 오롯이 한 장일 수 있다는 것. 0.7%p의 마음이 실린 깻잎 한 장, 아래 깻잎, 오롯이 한 장을 생각하다가 배가 고프다. 아, 밥 먹고 힘내야겠다. <김문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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