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동우의 월요논단] 우크라이나 전쟁의 참상을 지켜보며

[남동우의 월요논단] 우크라이나 전쟁의 참상을 지켜보며
  • 입력 : 2022. 04.25(월) 00:00
  • 최다훈 기자 orca@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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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2월 24일 '강한 러시아'의 부활을 꿈꾸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수많은 인명 피해와 씻을 수 없는 전쟁의 상처를 남기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1991년 소련 해체와 함께 독립했지만 이후에도 러시아의 안보 위협은 지속됐다. 패권국가로의 복귀를 꿈꾸는 러시아에게 우크라이나는 포기할 수 없는 전략적 요충지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도 우크라이나 정치권과 국민들은 친서방파와 친러파로 나뉘어 국론은 분열되고 일관성 있는 정책도 추진되지 못했다. 우크라이나의 가장 큰 실책은 억제 수단의 상징인 핵무기를 포기한 것과 대신 NATO 가입을 추진했지만 이마저도 성사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독립 직후 '세계 3대 핵무기 보유국'이었으나 미국·러시아·영국·프랑스 등의 안전 보장 약속을 믿고 1996년까지 러시아에 모든 핵무기를 반환했다. NATO 가입에 실패한 비핵국가로는 강대국인 러시아와의 세력균형을 이룰 수 없었으며 이로 인해 발생한 힘의 공백은 결국 참혹한 전쟁을 불러왔다.

세력 불균형으로 인한 힘의 공백 발생이 무력 충돌이나 전쟁으로 이어진 사례는 많이 찾아볼 수 있다. 1950년 북한에 의한 6.25전쟁은 500명의 군사고문단만을 남겨둔 채 1949년 6월 남한에 주둔하던 미군이 철수한 직후였다. 중국이 1974년 남중국해 파라셀 군도 영유권 확보를 위해 베트남을 상대로 한 무력 사용도 대표적 사례다. 베트남 전쟁에 참전 중이던 미군이 국내 반전 여론 등으로 철수하면서 발생한 힘의 공백을 기회로 전략적 목표를 달성한 것이다. 중국의 이러한 무력 사용은 1988년 스프래틀리 군도 일부 점령으로 이어졌다. 중국은 또한 1995년 2월 필리핀을 상대로 무력을 사용해 필리핀이 실효적으로 점령하고 있었던 스프래틀리 군도 최동단에 위치한 Mischief Reef을 탈취했다. 1992년 필리핀 상원의 압력으로 미국이 필리핀에 있는 기지를 포기한 직후 발생한 무력 충돌이었으며, 이 역시 힘의 공백 상태에서 발생했다.

안보 전문가들은 우크라이나가 강력한 동맹체제나 안보 수단을 확보하지 않은 상태에서 강대국의 약속만 믿고 핵을 포기했기 때문에 러시아가 2014년 3월 우크라이나의 자치공화국이었던 크림반도를 무력으로 점령하도록 허용했으며, 지금은 더 큰 위기에 직면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는 세력불균형으로 인한 힘의 공백이 얼마나 치명적인 안보 불안을 야기하고 국가의 생존을 위협할 수 있는지 잘 보여준다. 한반도는 물론이고 동아시아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재의 안보 상황은 우크라이나 사태의 연장선상에 있다.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국가를 보호할 수 있는 강력한 국방력의 필요성은 물론이고 우리의 소중한 안보 자산인 한·미동맹을 잘 발전시켜 나가야 되는 이유이다.

<남동우 제주대학교 교수·예비역 해군 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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