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산이 기억하는 '부종휴', 우리도 기억해야죠"

"한라산이 기억하는 '부종휴', 우리도 기억해야죠"
지난 30일 서귀포 인터뷰책방서 문화도시 책방데이
'선각자' 부종휴 업적 조명하고 앞으로의 과제 제시
부종휴 선생 유족인 큰딸과 사위 참석해 의미 더해
  • 입력 : 2022. 07.31(일) 11:45
  • 김지은 기자 jieun@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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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0일 서귀포시 서호동 인터뷰책방에서 열린 '문화도시 책방데이'에서 강시영 제주환경문화원장이 부종휴 선생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인터뷰책방

[한라일보] "우리가 부종휴 선생을 기억해야 할 이유는 분명합니다. 기념사업이 하나씩 진행되고 있어 다행이지만 아직 갈 길이 멉니다."

지난 30일 서귀포시 서호동 인터뷰책방에서 열린 '문화도시 책방데이'에서 강시영 제주환경문화원장이 말했다. 인터뷰 책방지기이기도 한 강 원장은 이날 '한라산이 기억하는 사람'이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풀어냈다. 책방데이는 서귀포 문화도시 조성 사업의 하나로 동네책방 6곳이 참여해 매달 마지막 주 토요일에 열리고 있다.

#부종휴 선생 취재 10여년 간의 이야기

한라일보에서 기자 생활을 하며 고(故) 부종휴(1926~1980) 선생을 10여 년간 취재했던 강 원장은 "2004년 '제주식물 세계화 100년' 연재가 계기가 됐다"고 했다. '부종휴'라는 인물을 빼놓고선 연재를 마무리 지을 수 없겠다는 판단이 섰다. 그때부터 부종휴를 쫓기 시작했다. 그는 "처음 연재할 때만 해도 부종휴 선생에 대해 아는 게 없었다"며 "모두 찾아다니면서 보도했다"고 말했다.

'부종휴 효과'. 그는 지금의 왕벚나무가 있기까지 부종휴 선생의 역할이 크다고 평가했다. "왕벚나무 원산지 논란은 과거에도 있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왕벚나무 축제가 (경상남도) 진해군항제인데, 그곳의 왕벚나무도 왜색이 짙다며 잘려 나갈 때가 있었지요. 그러던 1962년 제주에서 부종휴, 박만규 두 식물학자에 의해 왕벚나무 자생지가 발견됐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그때부터 진해에선 왕벚나무를 베는 일이 멈춰졌고 대대적인 증식이 이뤄졌습니다. 부종휴 선생은 우리나라 왕벚나무 문화를 바꾼 분입니다."

그는 "한라산천연보호구역과 국립공원이 지정된 데에도 부종휴 선생의 공로가 있다"며 "여러 차례 전문가 답사가 이뤄졌는데 늘 조사단에 참여해 현장 조사에 나섰다"고 했다.

'한라산이 기억하는 사람'이라는 주제로 강연하는 강시영 제주환경문화원장. 사진=인터뷰책방

#부종휴 기념사업 시작… "앞으로가 중요"

부종휴 선생이 1945년 김녕초 교사로 부임한 이듬해인 1946년 만장굴을 발견해 명명한 건 "선구자적인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강 원장은 말한다. 우리나라에서 동굴 조사가 본격적으로 이뤄진 게 1958년 경북 울진 성류굴이라는 기록과 비교해도 10년 이상 앞선 까닭이다. 그는 "만장굴과 빌레못동굴 등 제주의 대표적인 용암동굴이 부종휴 선생의 발길을 거쳤다"고 덧붙였다.

부종휴 선생과 만장굴을 발견한 꼬마탐험대를 집중 조명한 이야기도 꺼냈다. "만장굴을 얘기하며 2004년 7월 꼬마탐험대에 대해 썼는데 당시 생존자 대부분이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어렵게 탐사해 세상에 내놓은 만장굴인데 부종휴 선생의 흔적조차 없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고 말이지요."

강 원장의 '부종휴 취재'는 10여 년간 계속됐다. 그런 시간이 쌓여 기념 사업에 대한 공론화가 시작됐고, 마침내 2015년 부종휴 기념사업회 추진위원회가 발족했다.

그는 "많은 분의 노력으로 추진위원회가 만들어지고 기념사업으로 확대됐다"고 했다. 그러면서 "현재 부종휴 선생에 대한 기념 조형물이 만장굴과 김녕초 입구, 관음사 야영장에도 설치돼 있다"며 "이게 시작이다.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부종휴 선생이 작고하기 전까지 야외 조사 활동을 함께했던 김찬수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장이 고인에 대한 추억을 꺼내놓고 있다. 사진=인터뷰책방

#추억 속 부종휴 선생… "시대 앞서간 인물"

이날에는 부종휴 선생이 작고하기 전까지 야외 조사 활동을 함께했던 김찬수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장이 옛일을 떠올리며 이야기를 더했다. 김 소장은 '부종휴 선생을 추억하다'라는 주제로 기억 속 그의 모습을 끄집어냈다.

김 소장은 "부종휴 선생은 시대를 앞서 간 인물이었다"며 "1967년 516도로 변에 해송 90만본을 조림한다고 했을 때 자생식물 멸종 우려 등의 이유를 들어 반대하며 희귀식물의 보존 필요성을 역설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제주시 구좌읍 하도리) 토끼섬 문주란이 전 세계적으로 어떤 곳에 분포하고, 그걸 '문주란선'(문주란의 자생 북한계선을 연결해 얻은 분포 경계선)이라고 하는데 이보다 남쪽엔 감귤을 재배할 수 있다고 했다"며 "사람들이 활용할 수 있는 지식을 만들어 전파했다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부종휴 선생의 유족인 큰딸 경옥(맨 오른쪽)씨와 남편 박흥석씨. 사진=인터뷰책방

#"NGO 역할하던 지식인… 사회가 우대해야"

김 소장에게 부종휴 선생은 끊임없이 도전한 과학자이자 NGO(비정부기구·단체) 역할까지 하던 지식인이었다. "부종휴 선생은 지식인으로서 지역사회에 대한 끊임없는 애정을 표현했습니다. NGO가 없을 당시부터 그 역할을 하던 지식인이자 학자였지요. 그런데도 지금까지 (우리 사회가) 대접을 못해드린 점이 아쉽습니다. 미래를 내다본 선각자를 우대해 주는 사회 분위기가 있어야 희생을 감수하면서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거나 이웃에게 사랑을 베푸는 사람들이 나타납니다. 많이 늦었지만 부종휴 선생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사회에 대한 작은 기여를 하는 일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날 책방데이에는 부종휴 선생의 유족인 큰딸 경옥씨와 남편 박흥석씨가 함께했다. 경옥 씨는 "강연 중에 '한라산과 우리는 그 분을 그리워하고 있다'는 글귀에 가슴이 벅찼다"며 "이 시간을 함께해 준 분들에게 감사를 돌린다"는 소감을 전했다.

이광준 서귀포문화도시센터장도 인사말을 통해 "저희의 비전이 '노지문화 서귀포'"라며 "제주 한라산을 비롯해 제주에 있어 왔고 있어야 할 것을 부종휴 선생이 찾아줬다. 그걸 미래 세대에게 전하는 역할을 저희가 해 나가야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인사말하는 이광준 서귀포문화도시센터장. 사진=인터뷰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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