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학주의 제주살이] (53)삼양검은모래해변의 사람들

[황학주의 제주살이] (53)삼양검은모래해변의 사람들
  • 입력 : 2022. 09.27(화) 00:00
  • 김채현 기자 hakch@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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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이른 아침 6시, 살그머니 이부자리를 빠져나와 씻지 않은 채로 곧바로 대문을 열고 나가 차에 시동을 건다. 거리에 차가 없는 시간이라 동회천 로터리에서 직선으로 곧장 도련동을 지나 삼양해수욕장에 내려설 때까지 10분이면 된다. 바다를 보러 가는 게 아니라 맨발로 해변을 걷기 위해서다.

밀물 때의 검은 해변은 새벽 어스름 빛과 밝아오는 하늘빛이 섞여 모래사장을 번들거리게 하고, 그 번들거림은 물의 밀려듦과 스며듦 사이에서 옅은 빛을 모으고 내뱉는다. 먼 방파제 끝에서 붉은 등빛이 깜박이는 것을 보며 무슨 생각이 떠올라 나는 미소 짓고, 쏴아~ 쏴아~ 무슨 말인가 하고 있는 물결 끝자리를 따라 맨발 산책자들이 하나둘 나타나 귀를 기울이며 물가를 걷는다.

검은 모래사장 앞에는 밤새 불을 켜고 있는 3층짜리 꽤 큰 베이커리 카페가 있고, 세 발 수레를 밀며 쓰레기를 줍는 노인이 집게를 들고 지나가고, 그 앞에는 과태료에 관한 매우 정상적인 안내문 입갑판이 서 있다.

폭죽 불꽃놀이 5만원 / 오토바이 통행 5만원 / 자정 시간 외 물놀이 10만원 / 쓰레기 버리는 행위 5만원 / 흡연 10만원 / 애완동물 목줄 미착용 5만원 / 애완동물 배변 미수거 5만원

오규원 시인의 시 '프란츠 카프카'의 시구를 연상시키는 그 안내문 근처에 나는 운동화와 양말을 벗어두고 바짓가랑이를 무릎까지 접는다. 모래사장에 발을 들여놓으면 처음 물 없는 곳은, 거기는 약간 차갑고 돌가루 알갱이들이 맨발 바닥을 텁텁하게 붙는 느낌을 준다. 이내 물 있는 해변에 발이 닿으면 온기가 있는 바닷물이 부드러이 발을 싸고 물결을 따라 모래 알갱이들이 발바닥 밑으로 새어나가는 느낌을 즐길 수 있다. 그리고 해변을 왕복하며 걷다 보면 한 물결이 밀려왔다 내려가는 그 짧은 사이에 모래사장은 한 장의 거울이 되고, 하늘과 하늘에 뜬 구름까지 얼비치며 어질어질하게 마음을 잡아끈다. 그것이 아무것도 뜻하지 않는다 해도, 자연이 주는 한 순간의 미소가 아무것도 아닌 건 아니리라.

떠밀려온 돌미역 같은 해초들을 피하지 않고 그냥 맨발로 밟고 지나간다. 그것들은 보기보다 미끈거리지 않고 그 거칠고 딱딱한 느낌이 살아 있다는 반응을 일으키며 묘하게 감각을 건드린다. 문득, 앞에서 못 보던 사람이 걸어오고 지나치며 보던 사람이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대부분 평상복 차림이어서 사람의 시선을 크게 방해하지도 않는다. 원피스를 입은 여인이 걷고, 나처럼 바짓가랑일 접어올린 사람이 걷고, 반바지 차림의 학생이 걷는다. 가끔 육지로 가는 비행기가 바다 위로 오르고, 오늘 아침엔 배라곤 가시권 내에서 가장 멀리 떠 있는 단 한 척이 있을 뿐이다. 나는 출근 준비를 위해 7시 반에 해변을 떠난다. <시인>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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