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윤의 한라칼럼] 관종(關種)의 순기능

[조상윤의 한라칼럼] 관종(關種)의 순기능
  • 입력 : 2022. 10.04(화) 00:00
  • 조상윤 기자 sycho@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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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모든이들이 관심을 받고 싶어한다고 한다. 겸손하면서 자제하고, 자신을 드러내지 않지만 보다 더 많은 이들이 알아줬으면 하는 게 요즘 세상이다.

'관종(關種)'이란 관심종자라는 말을 줄인 말이다. 관심을 받고자 하는 사람을 뜻한다. 일상적으로 널리 쓰이고 있어 새로운 단어가 아니다. 굳이 덧붙이자면 SNS의 발달과 비디오 플랫폼의 급성장으로 개인 콘텐츠가 많아지면서 관종은 자연스럽게 발생하고, 증가했다고 볼 수 있다.

더불어 '침묵하는 다수'를 넌지시 꺼내 본다. 어떤 국가 또는 집단에서 자신의 의견을 공개적으로 표현하지 않는 불특정 절대다수를 말한다.

관종, 침묵하는 다수 모두 세상이 급변해도 예나지금이나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그 근본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관종의 출발점인 인터넷의 시초부터 따지면 고작 반백년 정도 밖의 시간이 흐르지 않았다. 그런데 세상은 말 그대로 눈 깜짝할 사이에 바뀌었다. 그러면서 사람들도 변해가고 있다. 아니다 변했다. 인터넷혁명이 아니더라도 세상과 사람들은 변할 것으로 예상됐다. 그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던 세상이 전개되면서 또 다른 세계에 적응해야 하고, 또 다시 맞춰 나가야 한다.

세상의 변화 속에서 사람들은 앞에서 열거한 관종이나, 침묵하는 다수에 모두 속하게 된다. 그것도 매우 빠르게, 현명하게 바뀌어간다.

문제는 자기만 있고, 주변은 없는 듯 세상이 펼쳐지고 있다는데 있다. 지금도 우리 주변엔 실질적으로 관심이 필요한 사람들이 더 많다. 하지만 일부에서의 관심은 '사치'로 전락하고 있다. 서글픈 세상이다.

세상이 제대로 돌아가고 있는 게 맞나 싶을 정도로 혼돈의 시간의 연속이다. 일국의 대통령에서 부터 국회의원과 그들이 속한 무리, 시도지사, 지방정치인, 소위 가진 사람들. 이들 모두가 관종이면서, 침묵하는 다수라고 생각한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맞춤형으로 변신을 하기 때문이다. 모두 다 그렇다는 얘기는 결코 아니다.

문득 웃픈 생각을 해본다. 지금이 어느 때인데 대통령 등 앞에 나열한 사람들이 꼭 그 자리에 필요한가라고. 현 시점에 맞는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단언하면 너무 가혹한 평인가.

관심종자들은 너무 과한 행동이나 말, 콘텐츠로 타인에게 안 좋은 이미지를 주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관종들의 역할에 변화가 필요한 때라고 본다. 세인들로 부터 관심을 끌려고 노력하는 만큼 사회적인 순기능을 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는 어떨까 싶다. 관종이 세상을 밝게, 그리고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게끔 하는 '나비효과'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까. 힘 있고, 더 많이 가진 자들이 먼저 어려운 곳을 보듬었으면 한다.

관종에 대해 검색하다 눈에 띈 글이 머릿속에 남는다. "지금 내가 글을 쓰는 것도 어쩌면 무의식 세계에서 관심을 받고자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조상윤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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