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살다보면 우리 주변에는 일에 파묻히거나 관계에 빠져서 헤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면서 그들은 즐겁거나 힘들다고 한다. 나의 경우도 지난 세월 살아오면서 마음을 다스리는 상담이나 명상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받아오고 있다. 상담이나 명상의 개념과는 모순되는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이러한 일과의 관계를 겪으면서 '이 일과 탈동일시 하며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는 없을까?'라는 기대를 해본다.
오랫동안 제주국제명상센터를 운영해오는 중 최근 들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재정이 열악해 직원봉급을 못주는 형편이 된 것이다. 그래서 직원이 없는 상태에서 몇 개월을 보내며 회복을 시도했으나 형편은 별반 호전되지 않았다. 운영이 어려워진 원인은 많겠으나 그 중 하나는 내가 이사장직을 오래하면서 명상센터의 운영이 정체됐다는 점이다. 이런 정체현상을 보면서 차기 이사장을 추대하려는 시도와 명상센터가 활성화될 수 있는 길을 모색했으나 뾰족한 방도가 나타나지 않았다.
그 동안 나는 제주국제명상센터를 운영하는데 주도적 역할을 해왔고 나 자신을 명상센터와 동일시하면서 마치 나 없으면 운영이 안 될 것이라는 과대망상을 갖기도 하였다. 말하자면 내가 곧 명상센터라는 에고(ego)로 가득 차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번 일을 겪으면서 이러한 에고가 명상센터를 정체시키고 있음을 깨달았고 이러한 절박한 현실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간절함도 갖고 있었다.
심리학에서는 동일시(identification)를 다른 대상의 특징을 자신의 것으로 여기면서 불안이나 기쁨의 감정을 겪기도 하고 소멸시키기도 하는 기제로 보고 있다. 예를 들어 강력한 힘을 가진 아버지의 행동을 일부 따라하면서 마치 자신이 아버지처럼 강력한 힘을 지닌 것으로 느끼는 아들의 경우라든가, 부모가 겪는 어려움을 마치 자신의 경험처럼 힘들어 하는 것이 동일시에 해당한다. 이에 반해 탈동일시(disidentification)는 의식의 흐름과 그 의식의 흐름을 관찰하는 자기를 분명하게 구별하는 현상이다. 특정한 생각이나 감정, 의지를 사실 자체와 동일시하는데서 탈피하는 것을 말한다. 아사지올리(Assagioli)는 인간은 자신이 동일시하는 모든 것에 의해 지배를 받아 자기를 분명하게 인식하지 못한다고 했다. 그래서 인간은 탈동일시 과정을 통해 해로운 심상이나 콤플렉스를 해체하고 그로부터 자유로워진 에너지를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금의 나는 이러한 동일시 현상에서 벗어나 탈동일시 상태로 전환해야할 시기다. 사적인 욕망으로 불안해 할 때, 켄 윌버의 초월적 자각으로 '나는 불안을 갖고 있다. 하지만 나는 불안이 아니다. 나는 그 뒤에 남아 있는 순수한 자각의 중심이며, 모든 생각, 감정, 느낌, 욕구에 대한 주시자이다.' 라고 선언하고 고요히 내면의 나를 바라보는 것이다. <박태수 제주국제명상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