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한라산에 하얀 눈이 내렸고, 누런 들판과 오름 그리고 돌담 너머 노랗게 익은 감귤열매가 탐스럽게 도드라진다. 어제 달렸던 감귤이 사라진 밭도 있다. 거의 매일 걸어서 출근하며 보는 겨울을 품은 제주공간의 모습이다. 도로에는 왕벚나무 낙엽이 바람에 이리저리 굴러다니며 어지럽더니 이젠 아예 아무 것도 걸치지 않은 나목(裸木)으로 찬바람에 맞서고 있다.
도로의 하늘이 확 트였다. 시야는 넓어졌지만 출근길 자동차로 도로는 훨씬 좁아졌다. 승용차 안에는 운전자 혼자이고, 버스에도 많은 사람이 타지 않은 채 운행하고 있다. 물론 출근길이 첨단과학단지로 이어지는 도로여서 그럴 수 있겠다 싶지만 다른 도로의 퇴근길 상황을 살펴보자. 제주교통방송이 아라동에 있어 저녁 약속이 있으면 버스를 타거나 남의 승용차를 얻어 타서 약속 장소로 갈 수밖에 없다. 버스를 타면 아라초등학교에서 광양로터리까지 이어지는 중앙전용차선을 따라 달린다. 승용차보다 빠른 것은 사실이지만 거기까지다.
지난 원희룡 도정이 인도를 줄이고 지금 제주해양경찰청 부근 도로에 심어져있던 아름드리 구실잣밤나무 가로수를 자르며 중앙버스전용차로를 만들었다. 꽉 막힌 도로에서 이산화탄소를 내뿜으며 오도 가도 못한 채 서있는 퇴근길 승용차들의 불편 때문에 버스가 조금 빨리 달릴 수 있는 거라면 너무 대가가 큰 것 아니었을까. 승용차를 끌고 나오는 시민들이 불편하도록 해서 대중교통수단 이용을 늘리겠다는 취지로 중앙버스전용차로를 만들었다고 하지만 지금 일어나고 있는 교통상황을 보면 시민들은 그 불편을 감수하더라도 승용차를 끌고 나오고 있다. 지난달 열린 제주도의회 도정질의에서 양경호 의원은 제주의 승용차 수송 분담률이 57%로 수도권보다 20%나 높은 전국 최고 수준이라는 주장은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이는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버스 수송 분담률 7~8%로 전국 최하위) 그렇다면 왜 많은 예산을 들여 중앙버스전용차로를 만들었는데도 버스 이용은 늘지 않고 이 구간의 도로는 더 막히고 있는 것일까.
해마다 차량은 만 대씩 늘어나고, 중앙버스전용차로는 전체도로의 극히 일부 구간에 시범적으로 만들어졌기에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고 대답할 수도 있다. 그래서 중앙버스전용차로를 늘리는 것이라고 하겠지만 이것만으로 시민들을 설득하기에는 부족한 듯하다. 이왕 공사에 들어갔다고 하더라도 무조건 행정당국의 의향대로 밀어붙일 것이 아니다. 먼저 중앙버스전용차로가 조성된 구간에 대해서 시민들의 의견을 세심하게 청취할 필요가 있다. 시민단체가 제시하는 의견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중앙버스전용차로를 만드는 것은 시민들에 편리함을 주기 위한 것이라면 수요자인 시민들이 우선이다. 어떠한 것도 시민의 안전과 편의보다 먼저일 수는 없다. 이 사회의 주인은 시민이기 때문이다. <송창우 제주교통방송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