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윤경의 건강&생활] 귀를 기울이면

[신윤경의 건강&생활] 귀를 기울이면
  • 입력 : 2022. 12.14(수) 00:00
  • 김채현 기자 hakch@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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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좋은 인생의 조건이란 어떤 것일까. 미국의 하버드 그랜트 연구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얻고자 1938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수백 명의 사람들을 주기적으로 면밀히 조사해왔다. 이 장기간의 방대한 연구 결과는 놀랍도록 단순하다. 행복한 인생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관계였다. 친밀한 관계가 사회적 계급, 부, 명성, 지능, 유전자보다 행복한 인생과 건강에 훨씬 중요했고, 고립은 죽음과 연관이 깊었다.

현대 사회에 공허, 우울, 불안, 분노가 늘어나는 배경에는 친밀한 관계의 결핍이 존재한다. 친밀한 관계란 진실하고 희망적이며 보살피는 사이를 뜻한다. 이때 첫째 요소가 진실이다. 거짓 위에 쌓는 관계는 모래성처럼 파도와 바람에 무너지므로 타인과의 관계가 진실하지 못한 경우 문제의 시작점은 자신과의 관계에 있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인정하는 과정 없이 자신에 대해 참된 희망과 자부심을 가질 수 없고 타인과도 제대로 관계 맺을 수 없다. 인간은 자신을 통해 타자와 세상을 만나고 관계하므로 이는 매우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팩폭은 fact(사실) 폭력의 줄임말이다. 문자 그대로라면 사실을 말하는 것이 왜 폭력일까. 왜 상처가 될까. 물론 우리 대부분은 드러내고 싶지 않은 모습들이 있고 그것이 드러날 때 부끄러움을 느낀다. 그런데 사실이 드러나 부끄러움을 느끼게 되는 것이 왜 폭력이며 상처일까.

개인이 자신에 대해 '나는 이런 사람이야'라고 느끼는 사회적 인격을 분석심리학에서는 페르소나라 지칭한다. 연극배우가 무대에서 쓰는 가면을 뜻하는 그리스어로 영어의 personality(성격)에 해당하는 말이다. 이는 개인이 세상을 살아가느라 적응하는 과정에서 형성하게 된 외피이지 그의 본질은 아니다. 외적 인격인 페르소나를 지나치게 동일시하면 자신의 어두운 그림자는 외면하게 되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 나아가 전체로서의 자기(Self)를 인식하지 못하는 자기소외 상태가 된다. 그러니 나는 이런 사람이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이기도 함을 인정하고 살아간다면 사실이 폭력과 상처가 아니지 않을까.

분석심리학적 관점에서 인간은 본래 선험적으로 내재돼 있는 자기를 지니고 있다. 이는 여러 심층 종교에서 말하는 진여(眞如), 참나, 내 안의 부처, 하느님의 모상(模像)인 인간, 인내천(人乃天) 등과 일맥상통한다. 자아(ego)가 의식의 중심으로 '나'로 경험되는 주체라면, 자기는 의식과 무의식을 합친 전체 정신의 중심이자 주체이다. 인간 정신에는 의식과 무의식을 통합하여 전체로서 살아가려는 경향성이 내재돼 있어서 자아가 자기를 의식화해 합일해가는 것이 나다운 나를 사는 자기실현이며, 그렇지 못한 채 단절되고 분열되는 것은 자기소외와 정신병적 상태이다.

결국 자기와의 관계가 도미노의 시작이다. 우울, 공허, 불안, 분노의 괴로움은 분열과 소외에서 자기실현으로 나아가라는 내면의 알람이니 깨어나 내 안의 소리에 귀 기울이자. <신윤경 봄정신건강의학과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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