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올해의 마지막 대작 두 편이 국내 극장가를 점령하고 있다. [해운대]와 [국제시장]으로 두 편의 천만 영화를 탄생시켰던 윤제균 감독의 뮤지컬 영화 [영웅]과 역대 전세계 흥행 순위 1위 [아바타]의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13년 만에 완성시킨 속편 [아바타:물의 길]이 그 두 편이다. 12월 한 달 동안 무려 700만이 넘는 관객들이 두 편의 영웅 서사를 보기 위해 극장을 찾고 있다. 두 편 모두 오랜 시간 관객은 물론 영화 관계자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아왔던 작품들로 팬데믹 이후 완전히 회복하지 못한 극장가에 활력을 불어넣는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는 중이다.
메가 히트를 기록한 뮤지컬 [영웅]을 한국형 신파의 거장 윤제균 감독이 뮤지컬의 주인공이었던 배우 정성화를 캐스팅해 영화화 한다고 했을 때, 전세계 관객들을 매혹시켰던 [아바타]의 속편이 드디어 극장에 개봉을 알렸을 때 과연 어떤 결과물로 완성 되었을지 걱정보다는 기대가 컸다. 자신만의 영화 세계를 구축한 감독들이 쉽지 않은 프로젝트를 만들어 낸다는 것은 언제나 설레고 환영할 일이기 때문이다. 부디 부담감을 떨쳐 버리고 그 이야기에 매혹되었던 호기심 그대로의 세계를 펼쳐냈기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두 작품을 관람했다. 결과적으로는 아쉬움이 남았다. 두 편 모두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간 느낌이랄까.
[영웅]은 안중근과 뮤지컬 [영웅]에 대한 사전 학습이 없이는 당황스러울 작품이다. 다 알고 있죠? 이 사람이 얼마나 위대한 영웅인지, 이 곡이 얼마나 감동적인지를 끊임없이 전시한다. 뮤지컬의 감동과 영화의 감동은 다른 종류일 텐데 영화 [영웅]은 이 점을 간과한 채 이어진다. 역사에 기반한 드라마틱한 스토리, 절창을 뽐내는 배우들의 열연, 다양한 로케이션을 통한 볼거리가 가득하지만 예상외로 영화는 평면적이다. 배우의 숨 소리 까지를 체감하는 공연장에서의 감각과 스크린 앞을 응시하며 서사를 따라가는 영화관에서의 관람은 전혀 다른 체험이다. 하지만 엔딩의 감동을 향해 달려나가는 이 비극의 서사는 관객이 타기도 전에 출발해버린 기차처럼 느껴진다. 거기에 더해 완급 조절을 위해 심어놓은 장치들이 덜컹거리기 까지 한다. 유머는 난데없고 조연들의 앙상블은 제 기능을 해내지 못한 채 부유한다. 뮤지컬 영화로서의 독창성 또한 아쉽다. [알라딘], [레미제라블]등 유명한 히트작들을 떠올리게 만드는 뮤지컬 장면들은 대한민국 최초의 오리지널 뮤지컬 영화라는 타이틀에는 걸맞지 않게 느껴진다.
[아바타:물의 길]은 마치170분 동안 펼쳐지는 기술 박람회처럼 느껴진다. 전편의 스토리를 거의 복제한 서사를 따라가는 일은 전혀 흥미롭지 않기에 세 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놀라운 기술력에 감탄하는 쪽을 택하는 것이 좋을 영화다. 하지만 이 또한 쉬운 일이 아니다. 영화를 보면서 여러 번 감탄했지만 그것은 단발마의 비명에 가까웠다. 놀랍다. 어떻게 저런 걸 구현해냈지, 정말 아름답고 선명하다, 대단하네. 라고 생각했지만 영화의 서사와는 별개의 감상이었다. 마음을 주고 따라갈 캐릭터가 없으니 내내 겉도는 느낌이었고 단조롭게 이어지는 교훈적인 서사에서 멀어지기 시작하니 도대체 얼마나 더 의자에 앉아 있어야 하나 자꾸 시계를 보게 되었다. 마치 마음을 주고 받지 못한 이의 끝나지 않는 자기 소개를 듣는 것 같은 기분. '너무 멋지시고 훌륭하시고 진짜 존경스러운데 저는 이제 그만 집에 가고 싶어요'를 입 안으로 맴맴 굴리고 있었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기 시작하자 튕기듯이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아바타]에 매혹되었던 13년 전을 떠올렸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생각해보니 두 편 모두 자신이 선보이는 어떤 것에 취해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는 관객과 함께 취하는 자리다. 자리를 마련한 이가 먼저 분위기에, 감정에 취해 잔을 건넨다고 흥이 오르진 않는다. 영화관을 나서면서 거대한 만찬에 초대 받은 뒤 먼저 나오는 느낌. 그러니까 이 자리에서의 어떤 순간도 나에겐 추억으로 남지 않겠구나 싶은 그런 마음으로 옷깃을 여몄다. 조금도 취하지 않는 나에게 문 밖의 겨울은 추웠다.
<진명현 독립영화 스튜디오 무브먼트 대표(전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