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실의 하루를 시작하며] 검은 호랑이는 아직 우리 곁에 있다

[이종실의 하루를 시작하며] 검은 호랑이는 아직 우리 곁에 있다
  • 입력 : 2023. 01.04(수) 00:00
  • 김지은 기자 jieun@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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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해마다 이맘때면 마음 한구석이 불편한 일을 겪는다. 양력만 새해일 뿐인데 음력 정초에 붙일 간지(干支)를 사용하는 걸 보게 된다.

세차(歲次) 간지는 음력으로 친다. 계묘년이 오려면 보름도 더 남았는데 이미 왔다고 너나없이 칭송하고 있다. 이런 지적에는 너무 따지지 말고 그냥 좋게 받아들이라는 답이 따른다. 듣다 보면 어느새 융통성이 없고 까다로운 사람이 되고 만다.

여덟 살 나던 해, 양력 정초에 겪은 일이 쉬이 잊히지 않는다. 설 명절이 가문에 따라 양력과 음력으로 달리 치러지던 시대였다. 봉행일이 제주도 안에서 동부와 서부 읍면지역으로 나뉘고 제주시 동지역, 한마을 안에서도 갈렸다. 필자의 집안은 당시 양력으로 설을 쇘다. 설날에 같은 골목에 사는 할머니 한 분을 만났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고 인사를 드렸다. 기특하다는 칭찬과 새해 덕담을 기대했는데 "동짓달에 세배를 하다니 제정신이냐!"는 핀잔을 들었다. 집에 가서 '월력'을 보니 동짓달 보름이었다.

음력은 우리의 일상생활과 사회문화에 깊숙이 자리하고 있다. 설날과 추석 외에도 제사나 생일을 음력으로 치르는 가정이 꽤 있다. 거의 사라진 두 명절 중 한식은 양력이 기준이지만 단오는 음력으로 정해진다.

우리가 사용하는 띠도 음력이 기준이다. '사주팔자'도 음력으로 계산한다. 태어난 해와 달인 세차와 월건에 음력으로 계산한 일진·시간을 더한 사주(四柱)를 육십갑자로 표기하니 여덟 글자(八字)다.

사주는 점을 보거나 작명할 때 외에도 건축, 혼사와 장례, 고사 등의 택일 자료가 되기도 한다.

'구정'으로 불리던 음력 명절이 '민속의 날'을 거쳐 '설날'이 된 게 30여 년 전이다. 그 이전에는 "신정과 구정이 이중과세의 폐해를 낳고 있다, 신정은 일제의 잔재다, 구정은 고리타분한 전통이다, 모두가 소모적 논쟁이다" 등 말이 많았다.

설 명절로 음력이 제한되고 양력이 강요되다시피 권장되던 때도 있었다. 지금은 '새해 첫날'이 하루 공휴일이고 '설날'은 앞과 뒤로 연이어 사흘이 공휴일로 지정됐으니 체계가 잡힌 셈이다. 묵은해·새해에 대한 개념과 양·음력에 따른 지칭도 서로 잘 맞추어야 하지 않을까.

'새해'의 시작은 양력과 음력으로 구분해서 맞이하면 참 좋겠다. 오늘은 양력으로 2023년 1월 4일이고 음력으로 2022년 임인년 섣달 열사흘이다.

새해 2023년이 온 것은 맞지만 간지로는 아직 계묘년이 아니다. 묵은해 섣달에 새해 간지를 써도 되는가. '한 해'가 오고 가는 것은 천문이 정하고 있으니 사람의 편의에 따라 좌지우지해선 아니 된다.

지금은 새해 2023년에 대해서만 축원하고 '검은 토끼' 얘기는 설날에 덕담과 함께 꺼내거나 입춘절을 넘기면서 하면 어떨까.

검은 토끼는 아직 오지 않았고 반갑게 영접했던 검은 호랑이는 아직 우리 곁에 있기 때문이다. <이종실 사단법인 제주어보전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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