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일운동 주역 고차동·김계석 해녀 독립유공자 지정 언제?

항일운동 주역 고차동·김계석 해녀 독립유공자 지정 언제?
제주해녀항일운동 주역 5명 중 3명만 유공자 인정
수형 기록 없다는 이유 등으로 번번히 수훈 탈락
기념사업위 "유사한 사례 20여 명… 수훈 추진"
  • 입력 : 2023. 02.27(월) 17:25
  • 김도영기자 doyoung@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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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해녀항일운동에 앞장선 고차동(왼쪽) 김계석 해녀. 제주해녀항일운동기념사업회 제공

[한라일보] 내달 1일은 제104주년 3·1절이다. 일본의 식민통치에 항거하며 불길처럼 타오른 항일운동의 중심에는 제주 해녀항일운동이 있었다.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어민투쟁이자 1930년대 최대 항일투쟁으로 평가받는 제주 해녀항일운동은 조천 만세운동과 무오년 법정사항일항쟁 등과 함께 제주도 3대 항일운동으로 알려져 있다.

해녀항일운동은 구좌와 성산, 우도 해녀들이 중심이 돼 일제의 생존권 수탈에 항거한 운동이다. 하도 보통학교 부설 하도강습소 1기 졸업생으로 야학을 통해 민족교육을 받던 부춘화(1908~1995), 김옥련(1907~2005), 부덕량(1911~1939), 고차동(1915~?), 김계석(1913~?) 등 5인의 해녀 대표가 주도했다.

1931년 6월부터 1932년 1월까지 이어진 해녀항일운동은 크고 작은 집회와 시위가 238회 진행됐고 1만7130여명이 참여한 것으로 전해진다. 해녀항일운동은 해녀들의 생존권 투쟁 차원을 넘어 제주 전역으로 항일운동의 물결이 퍼지는 데 큰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들의 공적을 기리고자 지난 2003년에 부춘화, 김옥련 해녀가 제주출신 독립유공자로 선정됐으며 부덕량 해녀는 2005년에 제주출신 독립유공자가 됐다.

하지만 고차동, 김계석 해녀는 당시 수형 기록이 없다는 이유로 아직까지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김태민 제주해녀항일운동기념사업위원장은 "고차동·김계석 해녀는 당시 해녀항일운동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지만 독립유공자 선정을 위한 심의 과정에서 여러번 선정되지 못했다"며 "비슷한 사례로 공적을 인정받지 못한 분들이 20여 분 정도 더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고 이 분들에 대한 자료들을 모아 수훈을 추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12일 제주시 구좌읍 제주항일운동기념탑 앞에서 열린 제주해녀항일운동 제91주년 기념식. 한라일보DB

문재인 전 대통령은 2018년 광복절 기념사에서 고차동, 김계석 해녀를 포함한 5인의 해녀항일운동 대표를 모두 언급했고, 오영훈 제주도지사는 지난해 8월 제주해녀항일운동 90주년 기념행사에서 "제주도정은 제주 해녀항일운동의 주역인 고차동, 김계석 해녀 또한 독립유공자로 서훈을 받을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힘쓰고 도민 여러분이 자긍심을 가질 수 있는 높은 수준의 보훈 문화를 만들어 가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대해 제주도보훈청은 올해 추경에 제주도 항일운동과 관련한 미서훈자 발굴 용역 예산을 신청해 반영되는 대로 고차동, 김계석 해녀 등에 대한 수훈을 우선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제주도보훈청 관계자는 "용역이 추진되면 미수훈자에 대한 서훈이 조금 더 수월해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며 "제주지역 500여 명의 항일운동가 중 현재까지 201명이 제주출신 독립유공자로 인정됐지만 고차동, 김계석 해녀 등을 포함해 나머지 300여 분에 대한 서훈도 추진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김태민 위원장은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또 다른 유공자들을 찾기 위해 관련 기록과 자료를 찾고 있다"며 "해녀항일운동의 가치를 조명하기 위해 행정당국과 도민들의 꾸준한 관심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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