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觀] 너의 우리는
  • 입력 : 2023. 03.17(금) 00:00
  • 김채현 기자 hakch@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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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소울메이트'.

[한라일보] 사람이 태어나서 혈연이 아닌 가장 가까운 관계를 맺는 최초의 타인을 우리는 친구라고 호명할 수 있을 것 같다. 놀이터에서 흙장난을 함께 하고 유치원에서 낮잠을 함께 자고 학교 입학식에서 우연히 내 옆에 서 있던 다른 사람. 그 다른 사람과 서로의 이름을 누구보다 많이 부르게 되는 일을 우리는 예측이나 했을까. 조금 닮았을 수도, 조금도 닮지 않았을 수도 있는 사이. 그 사이는 얼마큼 좁고 멀며 혹은 길고 깊을까.

영화 '소울메이트'는 영혼의 단짝이라고 할 수 있을 친밀한 타인들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어린 시절 만나 15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서로의 많은 것을 공유한 두 여성 미소와 하은의 삶이 마치 아코디언 북처럼 펼쳐진다. 중국 소설 '칠월과 안생'을 원작으로 한 영화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의 리메이크이기도 한 '소울메이트'는 원작의 거칠고 뜨거운 결을 곱고 촉촉하게 매만진다. 원작이 불처럼 일어나 데일 듯 절절한 감정으로 보는 이를 생생한 온도 안으로 끌어당기는 식이라면 '소울메이트'는 영화의 주요 배경인 제주도를 닮았다. 물처럼 은근하게, 관객들을 인물의 감정에 젖어들게 하며 잔상을 길게 남기는 쪽이다.

하나의 섬이었을 두 사람, 미소와 하은이 어떤 풍랑을 맞고 어떻게 깎여 가고 단단해지며 마침내 스스로의 꼴을 찾아가는지를 영화는 섬세하게 그려낸다. 원작과 가장 다른 설정은 '그리다'라는 동사가 형용사처럼 사용된다는 점이다. 대상을 앞에 두고 사진처럼 정밀하게 그려내는 하은의 그림과 속내를 자유롭게 펼쳐내는 미소의 화폭은 각자의 어떤 부분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요소다. 하은은 타인을, 미소는 자신을 더 많이 들여다본다. 둘의 우정은 바라보고 그리며 닮아가고 멀어진다. 세월이 주는 예기치 못한 변수들 앞에서 두 사람의 끈은 팽팽하게 당겨지기도 하고 느슨하게 풀어지기도 하지만 기적이라고 해도 될 만큼 그 끈을 쥔 양손에는 힘이 들어가 있다.

 수많은 우연을 필연으로 만들려는 노력은 아마 친구 사이에서 가장 강력한 동력으로 작용할지도 모른다. 언제 가까워졌는지 어떻게 멀어졌는지 모를 타인을 향한 안간힘은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 아닐 것이다. 그 힘은 친구라는 타인이 내게 준 것, 우리로 존재했던 시간이 선물한 것 그리고 수많은 감정들이 끓어 오르고 녹은 뒤 굳어진 어떤 정수에 가까울 것이다. 누군가를 그리고 그리워하는 시간은 결국 그 누군가의 곁에 늘 머물던 나를 찾아가는 여정이라고 '소울메이트'는 공들여 곱씹는 영화다.

우리는 어쩌면 삶의 변곡점마다 떠오르는 누군가의 얼굴과 이름, 잊지 않은 전화번호와 버릴 수 없던 사진들이 있어서 나의 시간들을 온전히 기억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이 영화를 보는 내내 다시 볼 수 있을지도 모를 누군가를 생각했다. 그때로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한 번은 돌이키고 싶은 마음. 그 마음을 과연 지난 우정이라고만 명명할 수 있을지 아직도 확신하지 못한다. 정말이지 어떤 우정은 사랑보다 더 깊은 마음의 골짜기에서 태어난 것만 같다. <진명현 독립영화 스튜디오 무브먼트 대표(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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