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나는 매일 달이 뜨는 시간을 알아보기 위해 음력을 기록하는 습관이 있다. 덤으로 간지(干支)까지 알 수 있는 즐거움이 있다고 지인에게 말한 적이 있다. 지인은 요즘 핸드폰으로 모든 걸 확인할 수 있는데 기록을 하다니 역시 꼰대기질이 있다는 면박을 받은 적도 있다. 그런 내가 지난 윤달 2월 1일(양력 3월 22일)을 확인하면서 하루를 빼먹은 것을 발견했다. 지난해 말에 얻은 올해 달력을 보면서 2월 윤달이 있다는 것과 올해 음력 2월에는 양력에도 없는 30일까지 있다는 것을 보고 신기하다는 여겼던 것이 생각났다.
그런데 하루를 빼먹으면서 잃어버린 것이었다. 이렇게 희귀한 음력 30일을 느끼지도 못하고 넘겨버렸다는 안타까움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지금까지 내 자신의 기록에 대한 불신이었다. 그러면서도 '틀린 것을 발견한 날부터 고치면 되지 잘못된 날을 찾는다고 뭔가 달라지나?'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기록을 '달력'과 맞추면서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자 일주일 전 기록을 빠뜨렸던 날을 찾아냈다. 평소 쓰는 양력과 달리 하루를 더하며 관행적으로 썼던 음력과 간지는 그때부터 틀렸던 것이었다. 나의 기록에서 사라진 하루는 어떤 의미일까? '나'라고 하는 개인으로 한정하면 아주 단순하고 아무 일도 아니다. 허나 나만 있지 않는 게 세상이고 보면 나와 직접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도 있고 그들과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로 확장하면 하루는 엄청난 의미를 담고 있었다. 기쁨과 슬픔, 아름다움과 추함, 희망과 절망 등 수많은 일들이 그 하루에 일어났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나에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다른 사람에게도 그럴 것이라는 건 너무나 이기적이다.
내가 기록하지 않는 하루는 과거를 나타나도록 기억을 소환하고 미래를 현존(現存)하게 하는 기대를 모두 갖고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동시에 기억과 기대로 채워지는 공간이기도 하다. 허나 과거는 기억만 있는 게 아니다. 망각이라는 암울함도 있다. 미래에도 기대와 더불어 포기가 존재한다. 우리는 과거가 지닌 엄청난 힘을 느끼면서도 이를 망각으로 몰고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잊어버리고, 기대하지 말아야 할 것을 기대하는 참 이상한 일이 지나간 하루에 벌어졌던 것은 또 아닐까. 그건 오만이다. 기억과 기대의 주체가 됐어야 했는데 빠진 하루를 찾으며 과거를 돌이켜보니 나 역시 기억해야 할 것을 망각하고 있었다.
어제가 4·3 추념일이었다. 75년 전 그날의 의미를 부여하며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아픔에 끈질기게 망각을 강요하고 심지어 비난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엄청난 의미를 가진 4·3 추념일을 제사처럼 지내는 것이 아니라 오늘을 사는 우리 모두가 기억과 미래 기대의 주체가 돼야 한다. 그래야 인권과 평화라는 인류 보편적 가치를 지켜낼 수 있다.
잃어버린 하루를 되돌아본 생각이다.<송창우 제주교통방송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