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언어의 갈라파고스 37] 2부 한라산-(33)한라(漢拏), 은하수와 무관

[제주도, 언어의 갈라파고스 37] 2부 한라산-(33)한라(漢拏), 은하수와 무관
한라(漢拏), 한자 자체에 뜻이 없는 소리만 빌린 표기일 뿐
  • 입력 : 2023. 04.18(화) 00:00
  • 김채현 기자 hakch@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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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拏, 은하수와 연관시키려 억지로 끌어들여

한라산(漢拏山)이란 산 이름이 처음 기록된 것은 '고려사'라는 책에서다. 이 책은 조선전기 문신 김종서, 정인지, 이선제 등이 왕명으로 고려 시대 전반에 관한 내용을 정리하여 편찬한 역사서다. 여기에 고려말 최영장군에 관한 기사에서 1374년(공민왕 23) 漢拏山(한라산)이라고 기록한 것으로 나오는데 이것이 첫 기록인 셈이다.

이후 1397년(태조6)에는 권근이 한라산(漢羅山)이라고 썼다, 한자가 좀 다르다. '승정원일기' 현종 13년(1672) 11월 20일 조에는 한라산(漢拿山)이라고 표기한 것이 눈에 띈다. 역시 한자 표기가 다르다. 초기 기록에는 한라산에 대한 표기가 여러 가지였음을 알 수 있다.

글자 풀이를 좋아하는 분들이 이걸 세밀히 풀어 그 뜻을 밝히고 이게 본래의 의미라고 주장하는 것이 일반적이므로 여기서도 풀이를 시도해 보자. 漢(한)이라는 글자는 한수 한이라고 한다. 형성문자다. 물 수(水)가 의미를 나타내고, 어려울 난(難)의 생략된 모습이 소리를 나타낸다. 한수(漢水)를 말하는데 장강(양쯔강)의 가장 긴 지류다. 또한, 중국의 한나라를 지칭하며, 이로부터 중국 최대 민족인 한족(漢族)을 나타내기도 하고 중국의 상징이 되었다. 이런 연유로 원래 한수 한이었던 것이 한나라 한으로 더 많이 알려지게 되었다. 일부 방언에서는 남편을 지칭하기도 한다.

보그드 한 올(2,261m)은 '성스러운 산'이라는 뜻으로 몽골의 여러 '한올산' 중의 하나다. 보그드 한 올의 정상에서 바라본 울란바토르와 정상의 모습.

한(漢) 자체로 은하를 의미하는 예는 없다

한라(漢拏)의 '한(漢)'이 어쩌다가 은하수와 연관됐는지는 모를 일이다. 다만 이 한(漢)의 용례를 보면 은하수를 이르는 말로 은한(銀漢), 운한(雲漢)이 있다. 이런 은하의 별칭들은 중국어에도 공통으로 나타나는데 이런 점으로 볼 때 중국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 해도 한(漢) 자체로 은하를 의미하는 예는 찾을 수 없다. 이 글자에서 뭔가 의미를 찾으려니 이런 은하수와 관련된 말을 동원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나(挐) 자는 붙잡을 나라고 한다. 형성문자다. 손 수(手)가 의미를 나타내고, 종 노(奴)가 소리를 나타낸다. 종이 도망치지 못하도록 손으로 붙잡다는 뜻을 그렸고, 이로부터 잡아끌다, 휴대하다 등의 뜻이 나왔다. 이 글자를 '라'로 읽는 곳은 한, 중, 일 동양 3국 중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아마도 한라(漢拏)라는 단어 때문에 이렇게도 읽는 글자가 되었으며, 이제는 이 한자의 발음이 원래의 나보다는 라가 더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拿(나) 자는 붙잡을 나라고 한다. 회의문자다. 손 수(手)와 합할 합(合)으로 구성되어 손을 합쳐 물건을 쥐다는 뜻이다. 여기에서 붙잡다, 체포하다, 장악하다의 뜻이 나왔다. 발음은 '나'다. '라'로 발음하는 곳은 역시 우리나라를 제외하면 없다. 이러니 북한에서는 한라산을 '한나산'으로 표기한다.

라(羅) 자는 새그물 라라고 한다. 가는 실 멱(糸)이 뜻을 나타내고, 라(罗)가 소리를 나타낸다. 새를 잡는 그물을 의미한다. 라(羅)는 점차 새뿐 아니라 짐승을 잡는 그물을 통칭하게 되었고, 이로부터 망라(網羅)하다, 포함하다, 구속하다의 뜻도 나왔다.

보그드 한 올의 정상의 모습.

羅(라), 拏(나), 拿(나) 중 어느 글자를 써도 무관

한라산을 지금의 漢拏山(한라산)으로 굳어지기 전에는 라 자가 왜 羅(라), 拏(나), 拿(나) 등으로 흔들렸을까? 이 중 어느 글자를 써도 문제가 없었다는 뜻이다. 그냥 어찌 됐거나 '할라', 혹은 '한라'라는 발음만 반영하면 되었던 것이다. 그러던 것이 세월이 흐르면서 그 뜻을 해석하기에 좋은 한라(漢拏)로 굳어져 간 것이다.

지금에 와서 공부를 많이 한 연구자들마저 한라를 운한을 잡아당길 만큼 높다는 뜻이라고 굳게 믿는 것은 아이러니한 현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주장을 펴는 이들은 거의 십중팔구 '글자 풀이가 그러니까'라고 하는 것이다. 이것을 백양환민은 '틀렸다'라고 판단한 것이다. 그래서 제주말로 '한울올음'이었던 것이 우리 국어로 '한울산'으로 되고, 이걸 한자로 표기한 것이 '한라산(漢拏山)'이라고 풀이하는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만한 부분은 바로 한라하고 표기한 한자는 그 본 뜻은 없고 단지 음으로만 읽었다는 점이다.

그런데 한울산이라는 말은 한라산에서만 쓰는 말은 아니다. 백양환민이 그런 사정을 알았다는 증거는 없지만 어쩌면 이런 생각까지 했는지도 모른다.

김찬수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장(전문가)

몽골에서는 예나 지금이나 산악숭배가 널리 행해지는 나라다. 성산을 나타내는 말로 '한울 혹은 한 올(khan uul)'이 있다. 이 말이 세 음절로 변화하면 한울산으로도 바뀔 수 있다. 이 경우 몽골에서 말하는 한올이란 큰 산이라거나 성산이라는 의미가 있으므로 그가 얘기하려고 하는 뜻과 부합할 수 있다. 백양환민은 한울오름이 기원어라 했으니 '하늘오름'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한라산은 과연 애초 '한울올음'이었던 것이 '한울산'으로 되고, 이걸 한자로 표기한 것이 '한라산(漢拏山)'이 된 것일까?

이 주장은 상당히 매력적이긴 하지만 한울이 한라나 할라로 변했을 것이라는 부분에서 음운상 부자연스럽다. 제주도에서는 이외에도 할로산, 한락산으로도 지칭했다. 그렇다면 '한라산'이라고 표기할 만한 산 이름은 이 외에는 없을까?

백양환민의 이 주장은 한라의 뜻이 지금까지 수백 년간 내려오던 풀이에서 탈피한 매우 획기적이고 도발적인 해석임에도 특정 독자 외에는 노출 기회가 적었기 때문이었는지 이후 논의에서 소외되고 말았다. 앞으로 이 글에서는 지금까지 제기된 주장들을 살펴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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