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대개 후회는 결정보다 쉽기 마련이다. 장고 끝에 선택한 길 앞에서 발이 떨어지지 않는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다. 내가 가는 이 길이 맞는 길인지, 가도 되는지는 그 길을 스스로 걷기 시작해야만 알 수가 있다. 길을 걷기 위해 필요한 것은 용기겠지만 용기에 더해지는 건 체험을 통한 감각의 도움이다. 낯설고 불편한, 처음 마주하는 맞닥뜨림의 공기들이 그 용기를 나아가게 만드는 바람이 된다. 경험하지 않고서는 확신할 수 없는 일, 모두의 삶은 그렇게 스스로가 확인한 확신 위에서만 명료해질 수 있다.
떠나온 길을 되짚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연이어 한국의 극장가를 찾았다. 안소니 심 감독의 '라이스 보이 슬립스'와 데이비 추 감독의 '리턴 투 서울' 두 편은 모두 '다시, 한국'을 찾는 두 여성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두 작품 속 한국을 찾는 이들의 사연은 다르지만 방향은 같다. 내가 누구인지를 발견하기 위한 여정, 나를 나답게 만드는 순간들의 정렬. 두 영화는 다른 경로를 택하지만 목적지는 동일하다. 바야흐로 돌아가고 돌아오는 이들의 발자국을 통해 자기 앞의 생을 발견하는 고단함과 벅참을 이야기하는 영화들의 방문이다.
'라이스 보이 슬립스'는 오래 우려낸 국 같은 맛을 느끼게 하는 영화다. 재료들의 모서리는 둥글게 깎여 있지만 재료의 맛이 잘 살아있는, 한국적인 표현으로는 '뜨거워서 시원한' 기분을 느끼게 하는 작품이다. 얼얼한 이야기지만 맵지 않고 시리게 차가운 풍파가 있지만 쉽게 온도가 낮아지지 않는다. 1990년대 한국에서 캐나다로 이민을 택한 엄마 소영과 아들 동현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 작품은 이민자의 삶과 이방인의 순간들을 섬세하게 관찰하며 보는 이들을 극 중 인물들의 삶 곁으로 당겨 앉히는 영화다. 안소니 심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이 작품은 한국의 이민자 이야기를 다뤄 전 세계적으로 깊은 인상을 남긴 '미나리'를 연상케 하는 구석이 있지만 다른 결을 지녔다. '미나리'가 부모와 자녀, 할머니로 구성된 한국의 전형적 가족 구조를 바탕으로 한 가족 영화의 꼴을 가지고 있다면 '라이스 보이 슬립스'는 이국 땅에 단 둘 밖에는 마주할 사람이 없는 모자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낯선 땅에 뿌리내리기 위한 고단함과 익숙한 땅을 그리워하는 간절함이 교차하는 엄마 소영의 안쓰러운 처지, 엄마와 같지만 또 다르게 이민 2세대로 삶에 적응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아들 동현의 모습은 여러 차례 연민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영화는 이들의 처지를 쉽게 낙담하거나 섣불리 비관하지 않는다. 너와 내가 누구인가를, 우리가 어디에 있는가를 끊임없이 질문하는 영화 속 모자, 특히 엄마 소영은 스스로의 삶을 긍정하기 위해 무거운 발걸음을 떼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 그녀는 자식과 연인, 언어와 불운 앞에서 스스로를 정확한 각도와 태도로 유지하는 사람이다. 소영이라는 인상적인 캐릭터와 캐릭터를 체화한 배우 김승윤의 호연 덕에 타국에서 다시 타국으로 향하는 '라이스 보이 슬립스'의 여정은 용기의 뒤를 밀어주는 바람의 형체를 육안으로 확인하듯 생동감이 넘친다.
캄보디아계 프랑스인인 데이비 추 감독이 연출하고 한국계 프랑스인 배우 박지민이 출연한 영화 '리턴 투 서울'은 제목 그대로 '다시 서울로 돌아오는' 프레디의 여정을 담고 있는 작품이다. 어린 시절 프랑스로 입양된 한국인 여성 프레디가 성인이 되어 자신이 태어난 곳, 한국의 서울과 군산을 찾는다. 생부를 만나 한국의 가족과 조우하고 긴 시간이 지나 생모와도 마주하게 되는 프레디의 긴 여정을 담고 있는 이 영화는 스토리 라인으로 예측할 수 있는 감동 코드와는 다른 길을 걷는다. '리턴 투 서울'은 철저히 프레디의 영화다. 그녀의 한국 이름은 '연희'지만 프레디는 연희가 되기 위해 한국에 온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오로지 나밖에 없음을 그리고 그렇게 말하기까지는 생각보다 훨씬 더 긴 시간과 고민이 필요함을 보여주는 영화다. '리턴 투 서울'은 정체성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프레디의 정체를 빨리 구체화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 영화다.
관객들은 영화가 지속될수록 점점 더 낯설고 불편하게 느껴지는 프레디를 마주하게 되는데 여기에 이 영화의 묘미가 있다. 누군가를 설득하기 위해 굳이 '누군가의 누군가'가 될 이유가 없음을 영화는 보여준다. 우리는 이 영화를 통해 프레디의 결정과 삶을 완전히 이해할 수도, 공감할 수도 없지만 나와 다른 누군가의 선택이 뻗어나가는 행로를 바라보며 내 삶의 변곡점들을 돌아보게 된다. '리턴 투 서울'은 그렇게 타인의 여정을 통해 나의 지난 경로를 돌아보게 만드는 작품이다.
'라이스 보이 슬립스'와 '리턴 투 서울' 두 작품은 모두 힘과 공을 들여 나의 방향을 모색하기 위한 여정을 감행하는 작품들이다. 두 작품을 만든 이들이 그렇듯 이 영화 역시 정확히 어딘가에 속해있다고 구분 짓기에는 어려운 작품들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영화들을 받아들이는 일에는 정보 이상의 체험이 필요하다. 그 체험에는 당연히 보는 이의 삶이 가장 구체적인 준비물이 될 것이다. <진명현 독립영화 스튜디오 무브먼트 대표(전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