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觀] 세계를 건너 나에게 갈게

[영화觀] 세계를 건너 나에게 갈게
  • 입력 : 2023. 06.02(금) 00:00  수정 : 2023. 06. 02(금) 09:33
  • 오소범 기자 sobom@ihalla.com
  • 글자크기
  • 글자크기

영화 '인어공주'.

[한라일보] 34년 만에 실사 영화로 만들어진 '인어공주'가 연일 화제다. 영화 '인어공주'와 관련된 포털 사이트의 관객 평점을 보거나, 유튜버들의 영상을 보자면 마치 제작사인 디즈니와 흑인 배우 할리 베일리가 관객들에게 몹쓸 짓이라도 한 것이 아닐까 생각될 정도다. 차마 옮겨 쓰기 어려울 정도로 험한 말들이 개봉 후 매일, 파도처럼 밀려온다. 혹자들은 '흑인'에 '못생긴' 인어공주 때문에 본인도 놀랄 정도로 불쾌했다고 하고 심지어 극장 안에서는 어린이 관객들이 인어공주가 등장할 때 공포에 울음을 터뜨렸다고 한다. '동심을 파괴했다, 어린 시절의 추억을 빼앗겼다. 정치적 올바름의 함정에 빠져 디즈니가 몰락할 것이다' 등 확신에 찬 발언들이 줄을 잇고 있다. 최근 이렇게까지 흥분한 대중들을 본 적이 없었기에 올라온 평들을 멍하니 보다가 문득 아찔한 생각이 들었다. 어린이들이 이런 글을 읽거나 보면 안 되겠는데?

'인어공주'는 누구나 아는 동화이자 디즈니를 대표하는 애니메이션이다. 바닷속에 살고 있는 인어공주 에리얼이 바다 너머 세상을 동경하다 용기를 내어 바다 밖으로 나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일견 단순해 보이는 줄거리로 느껴지지만 성인이 되어 본 '인어공주'의 속 이야기는 훨씬 복잡하고 처절했다. 공주라는 지위와 누구라도 탐을 내는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진 에리얼은 인어 친구가 없다. 그의 곁을 맴도는 물고기 플라운더를 제외하고는 드넓은 바닷속에서 대체로 혼자다. 바다 너머의 소식을 가져다주는 정보통 갈매기 스커틀 정도가 그녀의 또 다른 친구라 할 만하다. 무려 6명의 언니들이 있지만 에리얼은 언니들과 지내는 시간 또한 없어 보인다. 바다의 왕 아빠는 막내딸이 위험을 택할까 전전긍긍하니 둘의 관계는 소원할 수밖에 없다. 대신 그녀는 늘 일상의 바닷속이 아닌 수면 위를 꿈꾼다. 가진 것이 많고 바랄 것이 없어 보이는, 아름다운 심해에 사는 공주이지만 그건 에리얼이 선택한 삶이 아니기에 그에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에리얼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의 환상을 실제로 체험하고 싶은 마음이다. 우연히 알게 됐지만 단박에 자신을 사로잡은 저 너머의 세상, 그곳으로 향하고 싶은 마음이 물보라를 일으킨다. 단순히 사춘기 소녀의 한때 호기심으로 치부할 수 없을 정도로 에리얼은 무모하고 단호하게 자기 앞의 생을 스스로 결정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이제는 경험하지 못한 채로 살아갈 수 없게 된 그는 자신의 가장 귀한 것으로 칭송받는 목소리를 잃어도 바다 너머로 나가는 일을 선택한다.

비극적이고 운명적인 사랑 이야기로 생각해 왔던 동화는 생각보다 훨씬 개인적이고 치열한 모험극이었다. 남들의 시선이나 평가와는 상관없이 자신의 욕망을 따르는 인어공주가 영화 내내 마치 용사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심지어 3일 안에 왕자와 키스를 해야 한다는 설정 자체도 로맨틱하거나 섹슈얼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건 인어공주 역할을 맡은 흑인 배우 할리 베일리가 아름다운 미모를 가지고 있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오랜만에 다시 본 이야기 속의 키스는 그저 말없이도 말이 통하는 존재를 찾은 이들의 악수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한참이 시간이 지난 후 다시 들여다 본 이 영화는 세계를 건너 자신에게 가려는 어떤 이의 안간힘으로 가득 차 있었다. 세차게 꿈틀거리는 꼬리와 비틀거리면서도 나아가는 다리, 잃어버린 목소리와 포기한 가족 등 수많은 핸디캡을 가진 인어공주 에리얼의 상황이 어쩌면 소수자인 흑인 여성 배우이기에 더 이입이 됐던 것 같기도 하다.

무언가를 넘어선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출신 성분이나 과거 경력이 텃세로 작용하는 경험은 일상에서도 비일비재하다.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것들이 타인의 평가에 의해 주눅 들고 제지당한 경험은 소수자들에게는 아마 일상일 것이다. 그 세계로 건너가면 안 돼, 너와는 어울리지 않아, 그런 허황된 꿈은 꾸지도 마라는 일갈들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이었을까. 많은 이들이 실사화된 [인어공주]가 과도한 PC 주의에 매몰돼 디즈니 특유의 꿈과 환상을 잃어버렸다고 말한다. 강박적인 올바름의 추구가 작품의 재미를 반감시켰다고 비난한다. 하지만 사실 '인어공주'가 비난이 아닌 비판을 받을 지점은 새로운 시도에 걸맞은 극적 재미와 완성도를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영화는 에리얼의 외로움과 고통, 욕망과 용기, 두려움과 떨림에 좀 더 많은 시간을 내어줬다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이 들게 만들 정도로 원작의 익숙한 플롯을 단조롭게 따라간다. 관객들의 시야를 트이게 할 만큼 전복적인 모험을 하지 않는다. 새로운 시대의 인어 공주로 흑인 배우를 선택했다면 러브 스토리를 빼는 건 어땠을까, 동물 친구들의 욕망에 대해서 다뤘으면 어땠을까 하는 곁가지 생각들이 감상 내내 쌓였다. 하지만 이 영화가 말하는 용기가 흑인 배우의 캐스팅 때문에 퇴색됐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영화 속 에리얼 이상의 용기를 낸 배우 할리 베일리의 세찬 물질과 서툰 걸음이 거둔 성과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게 됐다. 비록 완전한 성공은 아닐지라도 새로운 '인어공주'는 어떤 세계를 건너는 다리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진명현 독립영화 스튜디오 무브먼트 대표(전문가)>
  • 글자크기
  • 글자크기
  • 홈
  • 메일
  • 스크랩
  • 프린트
  • 리스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밴드
기사에 대한 독자 의견 (0 개)
이         름 이   메   일
2524 왼쪽숫자 입력(스팸체크) 비밀번호 삭제시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