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언어의 갈라파고스 50] 3부 오름-(9)용눈이오름, 다랑쉬오름 곁의 낮은 오름

[제주도, 언어의 갈라파고스 50] 3부 오름-(9)용눈이오름, 다랑쉬오름 곁의 낮은 오름
용눈이오름은 용(龍)과 무관, '넓고도 낮은 오름'
  • 입력 : 2023. 08.08(화) 00:00
  • 송문혁 기자 smhg1218@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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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눈이오름, 높이는 은월봉과 같으나 면적은 두배

[한라일보] 송당에서 성산 쪽으로 가는 중산간도로 가까이에 있다. 다랑쉬오름에서 가깝다. 정상에 원형분화구 3개가 연이어 있고 그 안에는 동서쪽으로 조금 트인 타원형의 분화구가 있다. 오름 기슭은 화산체가 형성된 뒤 용암류의 유출로 산정의 화구륜 일부가 밀리면서 용암류와 함께 흘러내린 토사가 이동하여 퇴적된 언덕이 산재해 있다. 이런 암설류와 분화구가 만들어내는 곡선으로 경관이 유려하다.

정상은 해발 247.8m이다. 그러나 오름 자체의 높이는 88m에 불과하다. 이것은 여기서 가까운 해발고 382m, 화산체의 높이 227m에 달하는 다랑쉬오름에 비하면 상당히 낮은 것이다. 은월봉과 비교했을 때도 용눈이오름은 88m인데 은월봉은 75m이니 13m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육안상으로는 거의 같은 높이다.

그러나 둘레나 면적은 상당히 차이가 난다. 은월봉은 둘레 2049m, 총면적 2만9307㎡지만, 용눈이오름은 둘레 2685m에 면적은 4만4264㎡이다. 면적이 무려 2배에 달하는 것이다. 이런 넓은 면적에 조화롭게 만들어내는 다양한 지형과 여기에서 만끽할 수 있는 주변 경관으로 탐방객의 인기가 높다.

높은 다랑쉬오름 곁의 낮은 용눈이오름. 난대아열대산림연구소 김진

용눈이오름의 이름은 참 아리송하다. 용+눈이+오름인가 용눈이+오름인가부터 헷갈리기 시작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용이 누워 있는 모양이라고도 하고 산 한가운데가 크게 패어 있는 것이 용이 누웠던 자리 같다고도 한다. 그리고 위에서 내려다보면 구무의 모습이 용의 눈처럼 보여 용와악(龍臥岳)이라고 한다고도 한다.

우리 고전의 기록을 보자. 우선 1709년 탐라지도에는 용유악(龍遊岳)이라 나온다. 유(遊)를 쓴 것으로 보아 당시에는 용노니오름으로 발음했거나 아니면 이와 유사하게 발음한 것을 이렇게 들었던 것 같다. 遊(유)라는 글자는 오늘날에는 놀 유라고 하지만 1447년 출간한 '석보상절', 1459년 '월인석보', 1576년 편찬한 '신증유합' 등 15~16세기 이래 중세국어에서는 하나같이 '노니다'라고 했다. 노닐 유라 한 것이다. 용눈이오름에 대해서는 18세기 중반 제주'삼읍도총지도', 1872년 '제주삼읍전도' 등에서도 이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1899년 '제주군읍지'에는 용안악(龍眼岳)으로 썼다. 여기서 눈 안(眼)이라는 글자는 '눈'이라는 뜻을 나타내려고 한 것이 아니라 그저 훈의 음인 '눈'만 빌려 쓴 것이다. 현대에 들어와서 용눈이오름, 용와악(龍臥岳 용눈이오름), 용와봉(龍臥峰) 등으로 표기했다. 이 지명에서도 누울 와(臥)는 훈가자로 쓴 것이다.

이 이름에 동원된 한자 중 용은 300년 이상 변함없이 용 용(龍)을 썼지만, 노닐 유(遊), 눈 안(眼), 누울 와(臥) 등 나머지 글자는 수시로 바뀌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 지명은 한자를 생활화하기 전 이미 사용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서귀포시 안덕면의 용머리. 김찬수

용눈이오름이라는 지명은 그래서 용+눈+오름의 구조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우선 여기서 '눈'이란 무엇인가. 훈가자로 동원한 노닐 유(遊), 눈 안(眼), 누울 와(臥)에 들어있는 노, 눈, 누에 관형격 어미 'ㄴ'이 붙었다는 점도 알 수 있다. 그래야 다음에 이어져 나오는 오름(岳)을 꾸밀 수 있다. 앞에서 은월봉을 눈드리오름, 는다리오름, 는ᄃᆞ리오름, 능다리오름, 믠다리오름, 민다리오름, 운월봉, 윤드리오름, 은달이오름, 은돌이오름, 은ᄃᆞ리오름, 은월악 등으로도 불렀음을 알게 되었다. 여기에 나오는 눈, 는, 능, 밍, 은, 윤, 응, 잉 같은 말들은 '낮은'의 뜻을 갖는다는 점도 밝혔다. 따라서 용눈이오름이란 용+낮은+오름임을 추론할 수 있다. 즉, 용+은월봉의 뜻이다. 그렇다면 '용'은 무슨 뜻일까? 글자 그대로 용(龍)이라고 해석하면 풀리지 않는다. 왜냐하면, 훈의 음만을 빌려왔는데 이걸 다시 훈 자체로 봐 버리면 엉뚱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면 용의 순 제주어도 있는 것일까?



'용'이란 순 제주어로 '넓다' 혹은 '크다'

'용'의 용례를 알아볼 필요가 있다. 지금은 사라진 우리 말 '어위'가 '넓다', '크다'의 뜻을 나타낸다. 이 말은 '왜', '왕', '용'으로 퍼져나갔다. 우선 '왜'로 쓰는 사례로는 조선 후기 '동언고략'이라는 국어 어원을 해설한 책에는 '대풍왈(大風曰) 왜바람'이라 했다. 대풍(大風) 즉, 큰바람을 왜바람이라 한다는 것이다. 이 말은 '왜'를 '큰'으로 본 것이다.

김찬수 소장

이후 점차 '왕'으로도 바뀌었는데, 식물 이름에는 상당히 많이 쓰인다. 왕고로쇠나무, 왕괴불나무, 왕느릅나무, 왕대, 왕모람, 왕벚나무, 왕자귀나무 등 나무 종류만 예를 들어도 수십 종이다. 여기에서 '왕'이란 말은 모두 '크다'는 뜻으로 쓰인 것이다.

'용'으로 사용하는 사례는 어떤 것이 있을까? 지명에서만 하더라도 용바위라거나 용머리 같은 이름을 볼 수 있다. 그 외로 용마루, 용골, 용진각, 용돌 등이 있다.

몽골 중세어에 '넓은', '큰'의 의미를 갖는 어휘로 '어웨', '으우', '아우' 등이 있다. 몽골 문어엔 '아구', '우우', '아귀' 등으로 나타난다. 이 말은 할하어, 부리야트어, 칼미크어, 오르도스어, 모구르어 등에서 유사하게 파생했다. 아귀탕의 재료가 되는 '아귀'라는 물고기는 (입, 머리 등이) 넓은 물고기라는 뜻이다.

우리 고어 '넓다'를 지시하는 어위에서 파생한 왜, 왕, 용 등이 이렇게 지명에 화석처럼 굳어진 채로 남아 있다는 건 다행한 일이다. 용눈이오름은 용+은월봉이다. 이 말은 '넓은 은월봉' 혹은 '큰 은월봉'이라는 뜻으로 '넓고도 낮은 오름' 혹은 '크고도 낮은 오름'의 의미다.

김찬수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장(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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