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창우의 한라칼럼] 제비와 까마귀 그리고 시간

[송창우의 한라칼럼] 제비와 까마귀 그리고 시간
  • 입력 : 2023. 08.08(화) 00:00
  • 오소범 기자 sobom@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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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섭씨 35℃라는 기온이 이제는 낯설지 않게 들리는 여름, 농부로 돌아왔다. 모든 것을 태워버리듯 하얗게 내리쬐는 대낮 태양은 무서운 기세로 태양을 향해 올라가는 칡넝쿨과 호박 줄기, 넓은 땅을 차지하기 위해 뻗어나가는 바랭이와 달개비와 같은 잡초들의 이파리들마저 늘어지게 한다. 그래도 요즘처럼 늦게 뜬 달이 점점 줄어들면서 서쪽 하늘에서 머무는 새벽에는 푸른 달개비꽃과 노란 호박꽃에 내려앉아 진주처럼 창백하게 반짝이는 아침이슬을 머금고 다시 활기를 찾아 어제보다 더 줄기를 훌쩍 키우고 있다.

새벽이면 이들만이 아니라 하늘을 나는 새들도 활기를 띤다. 여러 가족이 모여 사는 우리 집 대들보에도 이른 새벽부터 제비들이 지저귀는 소리로 시끄럽다. 몇 년 전부터 봄이면 찾아와 부부의 연을 맺고 집을 지어 알을 낳고 새끼를 기르기 시작한 제비가 세 가족이었는데 올해는 겨우 한 가족으로 줄었다. 사연인 즉 올해 알에서 깨어난 새끼들이 겨우 눈을 뜨고 입을 벌려 먹이를 달라고 지지배배 시끄럽게 보챌 때쯤 까마귀 한 무리가 공격했기 때문이다. 까마귀들의 공격이 의도적인지 아니면 우연인지 알 수는 없으나 우선 집을 부숴 날 수 없는 새끼 제비들이 떨어지도록 했다. 까마귀들이 날카롭게 지르는 소리와 속수무책 울부짖는 어미 제비 소리 때문에 밖으로 나온 주민들이 떨어진 새끼들을 발견했으나 이미 손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지금은 보 한쪽 구석에 그때 제비인지 아니면 다른 제비인지 모르나 새끼를 기르고 있다. 까마귀들은 집 앞 가로등에 모였다가 수시로 제비집을 공격하고 있다. 주민들은 제비는 통과할 수 있고 까마귀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대나무를 걸치고, 수건으로 막아보고 있지만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

어떤 이들은 세상사가 다 그런 거 아니냐고 말하기도 한다. 제비들이야 우리가 사는 곳에 집을 지어 살아왔다지만 최근 들어 왜 까마귀들이 도심까지 내려와 제비까지 공격대상으로 삼고 있을까. 그 이유는 모르겠지만 제비 새끼들이 없어지면 내년 봄 제비는 다시 찾아오지 않을 수도 있지 않을까.

제비를 보면서 문뜩 떠오른 생각, 우리도 까마귀와 제비들처럼 '강자가 독식'하는 동물의 세계로 진입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것이다. 앉아도 등에서 땀이 줄줄 흐르는 불볕더위에 없는 사람들은 헉헉거리며 죽어라 일을 해야 하고 힘 있는 이들은 에어컨이 빵빵 나오는 사무실과 차 안에서 이들을 외면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래도 시간은 더위에 지치지도 않고 흐른다. 이 시간에도 저항할 수 없는 이들은 쓰러져 가고 있다. 이들을 보호하고 함께하지 않으면 우리 사회는 결국 무너질 수밖에 없다. 동물의 세계에서 까마귀를 탓할 것 없지만 사람 사는 세상에선 가진 자들이 베풀어야 한다. 가진 것도 시간이 지나면 한순간이다. <송창우 농부·전 제주교통방송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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