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언어의 갈라파고스 54] 3부 오름-(13)지미봉과 종달 마을의 이상한 관계

[제주도, 언어의 갈라파고스 54] 3부 오름-(13)지미봉과 종달 마을의 이상한 관계
'종달' 마을 이름은 지미봉의 또 다른 이름에서 기원
  • 입력 : 2023. 09.12(화) 00:00
  • 김지은 기자 jieun@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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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달, 땅의 꼬리인가 땅의 끝 봉우리인가


[한라일보] 제주도에 종달리라는 마을이 있다. 제주시 구좌읍에 속하며 서귀포시 성산읍과 연접한다. 마을 이름 종달의 지명 풀이가 분분하다.

①'종달(終達)'은 맨 끝에 있는 땅, 제주목의 동쪽 끝 마을, 또는 종처럼 생긴 지미봉(地尾峰) 인근에 생긴 마을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원래 종달은 종다릿개(終達浦)라는 포구 이름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이며 주민들은 종다리 또는 종달이라 부른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이 제시한 내용이다.

지미봉 자락에 형성된 종달리, 종달이란 지미봉의 또 다른 이름이다. 김찬수



②'종달(終達)'이란 명칭은 '통달함을 마쳤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또한, 마을의 상징인 '지미봉'은 '땅의 끝, 땅의 꼬리'라 하여 어쩌면 제주의 마지막 마을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이유로 종달리에는 지미봉이라는 산이 있다. '지미'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은 이곳이 제주도 땅의 꼬리 부분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③ 조선 시대 제주목(濟州牧)의 마침이란 뜻에서 지리적 행정적으로 '마침 이루어진 부락'이라는 데서 종달이라 했다.

④'종달은 북제주군 구좌읍 지역으로서 종처럼 생긴 산(지미봉) 밑이 되므로 '종달'이라 하였다.

⑤ 지미봉은 꼬리와 비슷하고, 이것이 바다로 돌출하고 있으므로 마을 이름도 이것과 관련해서 붙였다.

⑥ 지미봉은 지미(指尾), 지미(只未) 등으로 표기된 바 있으나 지금은 지미(地尾)로 표현하고 있다. 이는 종달 지명 유래와 관련지어 '땅의 꼬리, 즉 땅의 끝 봉우리'라고 한 데서 연유하고 있다. 이상 ②~⑥은 제주특별자치도 공식 홈페이지에 소개한 지명유래다.



황당무계한 종달 마을 이름 풀이


미안하지만 대체로 황당무계하다. ① 제주도의 맨 끝에 있는 땅이라거나 동쪽 끝 마을이라는 뜻이라면 이건 한자 풀이 그 자체다. 그렇다면 한자가 들어오기 전에는 어떻게 불렀나? 제주도의 맨 끝에 있는 땅은 무수히 많은데 왜 여기만 종달이라고 했나?

②'종달(終達)'이란 '통달함을 마쳤다', 이게 무슨 말인가? 해괴한 풀이다. ③ 제주목의 마침이란 위치도 무수히 많다. '마침 이루어진 부락'은 또 무슨 말인가? ④ 지미봉이 종처럼 생겼고, 그 아래에 있으니 종달이라고 했다니 이건 무슨 뜻인가? 지미봉의 '지(地)'도 한자이고, 닮았다는 종(鐘) 역시 한자인데, 이 두 말은 서로 어떤 관련도 찾을 수 없다. 한자 풀이를 적용해서 어떻게든 말을 만들어 보려고 했을 뿐 설득력이 없다. ⑥'땅의 꼬리, 즉 땅의 끝 봉우리'란 설명도 한자에 견인된 풀이일 뿐이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점으로 종달의 지명을 푸는 데 지미봉을 끌어들인다는 점이다. 위의 설명들을 보면 하나같이 종달과 지미를 엉성하게 얽어 놓았다. 종달은 종달로 풀고, 지미는 지미로 풀 것 같은 데 그렇지가 않다. 왜 그럴까? 과연 종달과 지미는 무슨 관계인가?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달(達)'은 고구려어로 산의 뜻을 갖는다. 종달의 '달(達)'은 산의 뜻이다. 종달이라는 지명은 고구려식 지명이다. 여기서 유념해야 할 부분이 하나 있다. 고구려어에서 산을 가리켜 처음부터 '달'이라고 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이와 유사한 발음이었던 것을 한자를 동원하여 표기한 것이 달(達)이다. 이런 한자표기는 1145년 편찬한 '삼국사기' 지리지에서 볼 수 있는 것이다. 북방의 여러 언어에서 이와 같은 계열의 어휘가 산재한다. 중세 몽골어에 '데레', '디라', 부랴트어에 '데레', 칼미크어, 오르도스어에 '데', 돌궐고어 '탁', 돌궐어 '닥', 야쿠트어 '티아'가 있다. 따라서 고구려어에서도 이와 유사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지미봉 '종달'이라 불렀던 언어집단의 흔적


김찬수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장(전문가)

종달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1530년 편찬한 '신증동국여지승람'이다. 그러나 이 책은 1481년에 나온 '동국여지승람'을 보완한 것이다. '동국여지승람' 역시 이른 시기의 지리지들을 참조하여 작성했으므로 종달이라는 말은 이보다 일찍부터 쓴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제주도 고대인들도 북방의 여러 언어집단과 마찬가지의 언어를 쓰는 집단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럼 '종(終)'이란 무슨 뜻인가? 이 역시 한자에 집착해버리면 그 의미를 찾을 수 없다. 지명이 갖는 뜻을 찾을 때 언제나 유념해야 할 부분은 처음부터 고대인들이 한자를 전제로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언어를 표기한 것이 문자이다. 문자가 먼저 만들어진 건 결코 아니다. '종(終)'이라는 글자도 한자 이전의 어떤 음을 적은 것이다.

'종'이라는 말이 들어있는 어휘 중 사용빈도가 높은 말 중에 '종다리'가 있다. 몸길이 약 18㎝ 정도의 종다리과에 속하는 작은 새다. 이 말은 '작은', '조금'을 의미하는 '종'에 '종다리'라는 새를 지시하는 북방어 '다리'가 결합한 말이다. 우리 고전에서 종다리는 '죵다리', '둉다리, '죵달이'로 나온다. '작은'의 의미로 '종'을 쓰는 예로는 한 손으로도 쓸 수 있게 되어있는 작은 가래를 나타내는 종가래가 있다. 주둥이 양쪽에 달린 끈을 허리에 차거나 목에 걸어서 씨를 뿌릴 때 쓰는 종다래끼도 있다. 작은 문을 쪽문이라고 하는데 역시 같은 어원을 갖는다. '작다'의 '작'과도 어원을 공유한다.

이처럼 '종'이란 '작은'의 뜻으로 쓴다. 그러므로 '종달'이란 '작은 산'이다. '종'은 '달'과 마찬가지로 한자어가 아니라는 걸 의미한다. '종달'이라는 마을 이름은 이 산 이름에서 유래한다. 지금의 오름 이름 지미봉을 어떤 언어집단은 '종달'이라 했던 데서 기원하는 것이다. 그들은 다랑쉬라는 이름을 남긴 집단과 동일 언어 계통일 것이다. 그렇다면 '종달(終達)'과 '지미봉'은 관계가 있을까? <김찬수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장(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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