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쯤 선데이서울에
반라의 여인이 야릇한 자세로,
"나 오늘 한가해요!"
요즘은 안 바쁜 게 죄인 양
모두가 언제나 쫓기듯 겨우,
"나 오늘 무지 바빠!"
숨가쁘게 죽어가는 사람들 속에
한가하게 버려진 나는,
"사람이 오건말건, 사랑이 가건말건!"
삽화=써머
벤치에 앉아 병들어 불퉁해진 미루나무 옹두리를 바라보다 멈춘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는 절쑥대는 가을이다. 그리고 시를 읽는다. 더 자세한 설명이 필요하지 않지만, 이 시인은 한가하게 버려진 혹은 한가하게 버려질 줄 아는 사람에 대해 이야기한다. 생활 세계의 어느 자리에 시침 핀을 꽂듯 주도권을 내려놓고 듬성듬성 시간을 꿰매는 시인은 달리기를 멈추지 못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숨 가쁘게 죽어가는 사람들 속에서 불행 또는 슬픔의 얼굴을 보고 있다. 왜? 라고 묻는다 해도 답변을 주지는 않는 채 "오건 말건 가건 말건"이라는 마음의 틈새로 찾아오는 한가하고 말랑말랑한 시간을 즐기며, 잊혀짐 마저 마다하지 않는 자세이다. 세상은 그림자나 이미지의 연속이어서 그것들은 순간순간 명멸할 뿐 실재 영원한 건 없다. 앞에 가는 사람이 뛰고 있어서 뒤에 가는 사람도 뛰어야 하는 정신없는 지상의 한쪽에서 사랑하는 이의 손을 잡고 걸으며 삶을 조망하는, 어느 산책자의 꿈이 시에 새겨진다. 세상에서 필요한 게 이것이라는 듯.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