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觀] 욕망이라는 이름의 줄타기

[영화觀] 욕망이라는 이름의 줄타기
  • 입력 : 2023. 10.06(금) 00:00  수정 : 2023. 10. 06(금) 08:38
  • 오소범 기자 sobom@ihalla.com
  • 글자크기
  • 글자크기

영화 '거미집'

[한라일보] 완성이라는 말을 언제쯤 완전하게 이해할 수 있을까 싶다. 일을 하다 보면 끝내야 할 때가 있는 법인데 그때마다 찜찜한 기운에서 벗어나기가 어렵다. 이건 나와의 타협 같은데? 아니 이것 이상이 있을 것 같은데 하며 초조해하다 보면 결국 시간에 쫓겨 원하지 않던 지점에서 나는 멈춰 서고 돌아서고 만다. '이번만 있는 건 아니니까'라며 위로하고 자조하지만 개운하지는 않다. 조금도. 그렇다고 완벽주의자여서는 아니다. 완벽과 완성은 엄연히 다르다. 전자는 언감생심 꿈도 꾸지 않는다. 다만 완성은 늘 간절하고 요원하다. 완성의 개운한 감정으로 나를 만족시키고 싶다는 마음에 달뜬 밤들 마다 내뱉은 한숨이 새벽안개처럼 뿌옇기만 하다.

'조용한 가족'으로 데뷔해 '반칙왕', '장화, 홍련', '달콤한 인생',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밀정' 등 장르를 넘나드는 다채로운 필모그래피를 선보여 온 김지운 감독의 신작 '거미집'은 영화에 대한 영화인 동시에 완성에 목마른 자가 어떤 우물을 파고 어떻게 목을 축이는지를 한바탕 소동극으로 그려낸 블랙 코미디 장르의 영화다. 걸작을 찍고 싶다는 욕망으로 전전긍긍하는 영화감독 김열이 자신의 영화 '거미집'의 마지막 한 장면을 다시 찍기 위해 벌이는 재도전의 이틀. 검열의 시대인 70년대 한국의 영화 세트장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 이야기는 끝내 이룰 수 없는 꿈을 잡기 위해 발버둥 치는 이들을 위한 애달픈 돌림 노래를 닮았다.

비단 창작자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각자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부단히 애를 쓴다. 좀 더 나은 삶을 살고 싶다는 욕망이 누군가의 매일을 부지런하게 가꾸고 일 년을 계획하게 만든다. 어제보다 나은 내일, 조금 더 발전한 나의 모습을 마주하는 순간을 생각하며 지금을 참고 어제의 후회를 반복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이 시도로 가득한 무수한 밤의 끝에서 많은 이들이 오늘은 망했다고 울다가 내일은 다를 것이라고 쓴웃음을 지으며 잠든다. 어제 떴던 태양과는 안녕,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떠오를 테니까!라고 한 다짐은 하지만 다음 날의 태양 볕 아래 또 수그러든다. 뜨겁고 고된 삶이여, 나는 대체 이 안에서 무엇을 찾고 싶어 참는 것일까.

'거미집'의 사람들은 스스로가 뽑아낸 실타래 안에서 움직이는 사람들이다. 수많은 분야의 장인들이 모여 완성하는 예술인 영화는 누구 하나가 특별하게 뛰어나다고 우수해지는 종류의 예술이 아니다. 어쩌면 영화라는 예술은 군무에 가깝다. 같은 음을 듣고 서로 다르게 느끼지만 일정하게 공유하는 리듬에 맞춰 몸과 마음을 움직이는 일 그래서 듣기 좋은 화음을 만들어내는 일이 영화를 만드는 일이다. 누구 하나가 독무를 추기 시작하면 대열은 금세 흐트러진다. 그리고 흐트러진 대열을 복구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 현장의 지휘자가 바로 감독이다. 감독이란 직업은 그 영토가 크건 작건 간에 자신의 영토의 왕인 자다. 주인공을 맡은 톱스타부터 현장을 우연히 지나가는 고양이까지 신경 쓰지 않으면 안 된다. 통치와 통제를 저글링처럼 능숙하게 해내야 하는 여기의 왕, 그에게 이 영화의 완성이 달려 있다.

'거미집'의 감독 김열은 이 통치와 통제 사이의 현장에서 걸작을 찍고 싶겠다는 욕망까지 더해진 스스로의 불협화음에 맞춰 춤추는 이다. 이 춤은 군무에서 멀찍이 떨어진 독무인데 누구 하나 봐주는 이가 없다. 내 안에 감춰진 완성에 대한 간절한 욕망이 스텝을 밟게 하고 완벽에 가까운 걸작이라는 먼 별의 형태를 더듬으려는 손짓이 애처로운 춤사위를 만들어낸다. 빛의 속도를 낼 수 있다면 혹여 닿을 수 있을까. 감독 김열은 속에서 천불이 나서 스스로를 태우는 자다. 결코 남이 될 수 없는 이의 얼굴이 김지운 감독의 영화 '거미집'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수많은 장르를 넘나들며 어떤 영화의 리듬에도 스스로의 멜로디를 만들어 온 김지운 감독은 '거미집'을 통해 꿈꾸는 자들의 악몽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나도 모르게 무언가를 너무 사랑해서, 그 사랑을 완성하고자 욕망하는 이들이 넘나드는 빛과 그림자가 은막 위에 거미가 친 수처럼 촘촘하다. 이 매끄러운 질감과 대비되는 울퉁불퉁 대는 감정의 촉감이 마치 아름답지만 좀처럼 손안에 잡을 수 없는 그 생명체를 닮았다.

<진명현 독립영화 스튜디오 무브먼트 대표(전문가)>
  • 글자크기
  • 글자크기
  • 홈
  • 메일
  • 스크랩
  • 프린트
  • 리스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밴드
기사에 대한 독자 의견 (0 개)
이         름 이   메   일
3765 왼쪽숫자 입력(스팸체크) 비밀번호 삭제시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