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영택의 한라칼럼] 한라산 최초의 등정기

[문영택의 한라칼럼] 한라산 최초의 등정기
  • 입력 : 2023. 11.14(화) 00:00  수정 : 2023. 11. 14(화) 10:16
  • 송문혁 기자 smhg1218@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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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제주는 생물권보전지역·세계자연유산·세계지질공원 등 유네스코 3관왕을 차지했다. 세계가 제주를 보물섬으로 인정한 것이다. 그 중심에 한라산이 있다. 한라산을 오른 이 중 최초의 등정기를 남긴 이는 백호 임제이다. 임제는 과거급제를 부친(제주목사 임진)께 알리려 어사화 등을 갖고 1577년 입도했다. 그리고 한라산을 비롯한 제주의 풍광을 '남명소승(南冥小乘)'에 담았다. 남명소승이란 남쪽 바다의 작은 역사라는 뜻이 담긴 고서이다. 신선을 만나는 기분으로 정상에 오른 임제는 다음의 한시를 지었다. "한라산은 선계인가(漢拏乃仙符) / 선록이 떼 지어 노닐고(中有仙鹿群) / 털은 서릿발과 눈처럼 하얗고(白毛若霜雪) / 도화문 점점이 박혀다네(點點桃花文) / 세인은 만나볼 수 없기에(世人不可見) / 머리 돌려 뜬 구름 바라보네(回首空烟雲)… "

1901년 한라산을 오르기 위해 제주를 찾은 외국인이 있었으니, 그가 독일인 지그프리트 겐테이다. 아편전쟁을 취재하러 일본에서 중국으로 가던 쾰른신문사 특파원 겐테는, 바다 한가운데 우뚝 솟은 한라산을 보고는 탐험 충동에 사로잡힌다. 어렵게 조선에 온 겐테는 금강산도 오르지만 바다에서 본 한라산을 잊을 수가 없었다. 다행히 신축민란(이재수 난)을 조사하러 제주에 갈 왕실고문인 외국인(샌즈)의 친서를 휴대할 사람으로 겐테가 선정되어 입도할 수 있었다. 하지만 민중봉기 와중이라는 이유로 제주목사 이재호는 겐테의 한라산 등반을 적극 만류했으나, 겐테의 결심을 꺾을 수 없었다. 결국 목사는 산행에 필요한 통역관과 짐꾼 등을 동행케 했다. 밤이 되자 겐테 일행은 벌목꾼들이 기거하는 동굴에 합류했다. 외국인에 대한 적대감을 인지한 겐테는 술병을 꺼내 마시곤 짐꾼들에게도 권했다. 생전 처음 마신 독한 술이 동행인들의 얼어붙은 몸과 마음을 녹였을까. "…프랑스 술 꼬냑은 조선 술 만 잔을 마신 것과 같다고도 했다. 도둑 소굴처럼 살벌했던 동굴 안에는 평화롭고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이 순간 난, 한라산에서 가장 인기 있는 사람이 된 것이 분명했다."라는 켄테의 기록은 계속 이어진다. "드디어 정상이다. 분화구 바닥에는 호수가 반짝이고 있었다. 동행인들은 호수가 아주 깊어 지하세계로 가는 통로가 있다고 주장했다. 여태껏 내가 결코 보지 못했던 아주 독특한 것, 아주 위대한 것을 오늘 체험했다. 백인은 한 번도 오르지 못한 한라산 등정은 내 생애 최고의 영광이 될 것이다."

백록담에 오른 겐테는 무수은 기압계를 이용하여 분화구 가장자리의 높이를 측정했다. 1947.67m가 최초로 측정된 한라산의 높이이다. 1915년 일제의 전국 토지 측량 시에는 1950m, 최근의 위성항법장치(GPS)로 잰 높이는 1947m이다. 이렇듯 제주의 가치를 먼저 알아보고 국내외에 알린 임제와 겐테는 우리가 또한, 기억해야 할 이름들일 것이다. <문영택 질토래비 이사장·귤림서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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