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훈의 제주마을 백리백경.. 가름 따라, 풍광 따라] (55)대정읍 무릉2리

[양기훈의 제주마을 백리백경.. 가름 따라, 풍광 따라] (55)대정읍 무릉2리
행복지수 가장 높은 농촌마을, 그 이상향을 현실로
  • 입력 : 2023. 12.22(금) 00:00
  • 오소범 기자 sobom@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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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무릉도원(武陵桃源)이라고 하는 이상향을 의미하는 글에서 마을 이름이 생겨났음을 알 수 있다. 마을을 형성하여 살아가기 시작하던 조상들이 꿈꾸던 세상은 현실의 고통과 억압 등에서 벗어나 후손 대대로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는 터전을 염원하였기에 마을 이름에 꿈을 새겨 넣었으리라. 하늘이 내려준 비옥한 토양과 자연환경이 있다고 이룩되어지는 꿈이 아니라는 것을 이 마을 조상들은 잘 알고 있었다. 이웃과 이웃이 함께 넉넉한 인심을 나누며 살아가고 있어야 가능한 마을공동체를 이뤄야 한다는 사실. 단순하게 살기 좋은 마을로 표현하기에는 부족함이 많다. 무릉2리가 그동안 거둔 성과들을 종합해보면 마을공동체가 가야 할 방향에 대한 이상적인 모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향동, 좌기동, 평지동. 3개의 동네가 합쳐져서 이뤄진 마을이다. 설촌 역사가 가장 오래된 인향동의 경우 1768년 도원리에서 중장리로 분리되었다고 한다. 이 지역의 대부분은 대정현 시절의 국영목장 관리인들이 기거하던 목장지였다. 마을 규모의 취락이 형성된 시기는 1830년대로 추정하고 있다. 외부에서 인구가 급속도로 유입된 것은 1910년 조선왕조의 국영목장지대가 민간으로 이관하게 되면서부터다. 왕조를 위해 말 생산기지 역할을 수행하던 곳에 사람들이 들어와 농경지를 만들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각 동의 설촌 초기, 인향동은 제주목 지역이었던 한림과 한경에서 대부분 이주하였고. 좌기동은 대정에서, 평지동은 한경과 모슬포 지역에서 살던 주민들이 이주하였다고 한다. 의미하는 바는 무엇이랴! 당시 유교문화가 지배하는 상황에서 조상 대대로 살아온 마을에서 새로운 경작지를 찾아 이주하여 새로운 운명을 개척하겠다는 것은 쉽게 결정 할 수 있는 사항이 아니다. 새로운 도전을 결단할 수 있었던 사람들이 지극히 미래지향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모여들어 마을을 이뤘으니 후손들에게 전해진 유전적 진취성이 남다르다는 뜻. 전에 주거지가 달랐기 때문에 세시풍속도 현저하게 달랐으나 지금은 특이한 면이 희박할 정도로 사라졌다고 한다. 세월이 흐르면서 동네 단위에서 마을로 융합을 이뤘다는 의미다. 마을 사업이라고 하는 공동의 목표를 가지고 새로운 가능성을 열자고 하는 공감대가 형성되는 순간 뭉치는 힘은 마을 주민들 스스로도 놀랄 정도라고 하니 개척정신이 가진 풍토성이라고 밖에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다. 리 단위 마을경쟁력이 괄목할 만한 성장을 보여주면서 얻어낸 성과와 경력도 화려하다. '무릉도원 농어촌체험 휴양마을' '범죄없는 마을' '정보화마을' '생태우수마을' '전국마을기업 우수마을' 등 다양하다. 특히 도농교류 사업에 있어서 얻은 많은 자신감을 토대로 더 나은 미래에 대한 확신으로 가득차 있다.

고호성 이장에게 무릉2리가 가지고 있는 최대의 장점을 묻자 간명하게 대답하였다. "무싱걸 해여도 모돠들엉 열심히!" 마을공동체정신을 제주어로 축약해서 설명했다. 이 보다 더 큰 자신감이 있으랴. 일찍 농외소득에 눈 뜬 마을 다움이 역력하다. 마을 결속력의 한계를 절감하는 것은 지리적 여건에 대한 행정당국의 빈약한 관심과 역할이다. 서귀포시와 제주시의 경계에 위치하고 있고 무릉2리 마을 중심에 청수리 지번을 가진 땅들이 대규모로 분포되어 있어서 농로확장, 배수시설과 농업용수 등과 관련된 문제로 민원을 호소하여도 행정시 두 곳이 떠밀기 일쑤다. 행정시와 행정시의 접경지역에서 이런 일이 비일비재 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상급기관인 제주특별자치도의 원활한 지도감독이 있지 아니하고서는 이러한 주민불편은 계속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

한라산 방향으로 방대한 곶자왈이 펼쳐져 있고, 인근에 영어교육도시가 있으며, 올레코스 3곳이 교차하는 마을. 그만큼 마을 발전에 대한 기대감과 포부가 크다. 농외소득에서 오는 경제적 낙수효과에 대한 전략적 집중도를 높이기 위하여 지속적인 분투와 각고를 이어가는 마을. 애향심이 없으면 불가능한 도전과제들 앞에 당당하고, 낙관적인 자세를 보여주는 무릉2리 주민들이 존경스럽다. <시각예술가>

눈 내린 농로에서
<수채화 79cm×35cm>

농촌마을 풍경은 초록이 지배하는 것이 상식이다. 그런데, 연필소묘라고 하는 요소를 가지고 설경을 그릴 수 있는 여건을 만난 것은 행운이다. 폭설은 아니로되 알맞게 농경지며, 멀리 보이는 집과 농업용수 저장시설이 주는 상징성까지. 나무들은 눈을 맞아서 독특한 꽃장식으로 시각적 흥미를 더하고 있다. 눈이 쌓인다는 것은 평소의 세상과 다른 세상을 보여주는 하늘의 행위이다. 연필의 입장에서는 이를 받아서 성실하게 표현하면 되는 것. 무릉2리가 보유하고 있는 강한 농촌의 면모를 그리려다 날씨의 도움으로 더욱 진지한 관찰을 할 수 있었다. 아무리 기술이 발달되더라도 결국 농사는 하늘이 도와야 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풍경화라고 하는 작업을 하면서 느낄 수 있었으니 무엇을 자각하게 하는 기회이기도 하였다. 구도가 형성하는 원근감 이외에 연필의 농담이 제공하는 눈 쌓인 들판의 공간감을 찾아내려 나름대로 치열하게 파고들었다. 생략과 과장이라고 하는 그림 본연의 임무를 떨쳐버리고 명도에 의하여 채도가 느껴지는 그런 세상을 설경 속에서 파고드는 것은 과도한 욕심이려니. 문득, 저 밭에서 자라는 월동채소들을 떠올린다. 끈질긴 생명력으로 살아남을 저 농민의 마음을 생각한다. 낮은 밭담에도 눈이 묻어서 정한을 더한다. 다짐하였다. 봄날이 되면 다시 이 장소에 와서 채도가 넘실거리는 풍경을 그리리라. 달라진 것은 색채뿐이 아닐 것이다. 다른 무엇이 기다릴 지는 모른다. 이 눈 쌓인 풍경 속에 어디선가 작은 새소리 들리고.



곶자왈의 하늘 향한 기도
<연필소묘 79cm×35cm>

단순한 풍경을 묘사하는 행위에서 가끔은 예술적 상상력을 동원하여 시각적 사유를 하게 된다. 평소에 도립곶자왈공원 인근을 지나면서 느끼는 단산을 배경으로 하는 이 모티브는 무릉2리 동쪽 끝지점 높은 지대에서 확연하다. 이 화산섬의 허파라고 불리우는 곶자왈이 생태자원이면서 학술적으로도 엄청난 가치를 보유하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거기에 그 의미를 함축적으로 각인시키는 풍광이 있다면 작가의 개인적 관점에서 이 모습이라고 판단하여 그렸다. 곧 경관적 가치가 역설적으로 증명하는 곶자왈의 진가를 무릉2리에서 발견한다. 앞에 펼쳐지는 곶자왈공원의 총 면적은 무려 126만 평이다. 여러 마을의 지번이 합쳐져서 만들어진 면적. 무릉리 영역은 29만평에 달한다. 시사하는 바 크다. 참고로 견주어 여의도 면적은 약 87만 평이니 얼마나 큰 보물창고를 보유하고 있는가? 그 가치를 입증하는 단순명쾌한 풍광. 숲 위에 산이 있고 산 위에 하늘 뿐.

숲과 하늘을 산이 이어준다. 숲의 심정을, 그리고 염원을 기도하듯, 하소연하듯, 하늘에 입을 열어 고한다. 이러한 경관적 메시지를 높은 전망 공간을 마련하여 탐방객들이 향유할 수 있기를 바라며 감히 그린 것이다. 예술적 감수성이 간혹 세상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입증하는 작은 관찰이라 여겨도 무방하다. 이 그림을 그리며 소망하였다. 도립곶자왈 공원 밖, 무릉2리 소유 땅에 만들어진 알맞은 높이를 가진 전망대에서 누구나 이 풍경을 감상하게 될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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