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수호의 하루를 시작하며] ‘교육의 봄’을 기다리며

[허수호의 하루를 시작하며] ‘교육의 봄’을 기다리며
  • 입력 : 2024. 01.03(수) 00:00  수정 : 2024. 01. 03(수) 10:44
  • 송문혁 기자 smhg1218@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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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최근 영화 '서울의 봄'이 뜨거운 이슈였다. '천만 관객'이라는 뜨거운 반응과 함께 정치적 공방에 휘말리는가 하면 그 영향은 교육계까지 미쳤다. 서울의 봄을 단체관람한 중학교의 교장이 보수단체로부터 고소당하고, 근현대사 교육과정과 연계한 6학년 단체관람은 유튜버들의 교문 시위로 철회됐다. 그 이유가 픽션으로 가미된 부분이 왜곡된 역사인식을 가르친다는 것이었다. 전두환은 내란죄로 체포되었고 12·12는 군사반란임이 사법적으로 입증된 역사적 사실이다. 우리가 오늘날 누리는 민주주의를 이해하는데 굉장히 중요한 사건임에도 이런 지엽적 사건들은 공교육 전체를 움츠러들게 한다.

나는 학창 시절 4·3에 대한 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 내가 4·3에 대해 알게 된 것은 교사가 되어서였다. 또한 내가 교육받지 못한 이유도 교사가 되고서 알게 되었다. 불과 십여 년 전만 하더라도 4·3교육을 하려면 교장에게 별도의 결재를 받아야 했다. 수업내용에 대해 매번 결제를 요구한다는 것은 교사 입장에서는 사전검열이다. 결국 교사들이 근현대사를 다룬다는 것은 굉장한 용기를 내야 하는 일이었다. 다행히도 많은 교사들의 노력과 정치적, 정책적 흐름의 변화로 지금 현장에서는 4·3교육은 당연하고 의무적인 일이 되었지만 여전히 근현대사에 대한 접근은 교사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부분이다.

헌법 제31조 제4항에는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 및 대학의 자율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고 명시되어 있다. 현실에서는 마치 교육의 자주성과 정치적 중립성이 충돌하는 것처럼 보인다.

안성경에 의하면 전범국으로서 역사교육의 모범으로 꼽히는 독일에서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합의가 있다고 한다. 첫째로 학생에게 특정 의견을 강요하거나 학생 의견을 제압해서는 안 되고, 둘째로 학문과 정치에서 논쟁적인 것은 수업 중에도 반드시 논쟁적으로 다루어야 하며, 셋째로 자신의 관점에서 판단할 수 있도록 선택하는 개인의 능력을 길러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쟁점을 피하는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다루며 그 과정을 통해 개인의 판단 역량을 길러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수업 소재를 찾고 가르치는 것은 교사의 권한. 즉, 자주성이다. 한편 쟁점이 되는 소재에서 교사가 일방적인 주장으로 학생의 의견을 꺾거나 설득하지 않는 것은 정치적 중립성에 해당된다. 결국 관점을 바꾸면 교육의 자주성과 정치적 중립성은 충돌되는 게 아니라 상호작용 속에 시너지를 일으킬 수 있다.

교사의 생각을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교육이라면 그것은 잘못된 교육이다. 하지만 학교교육이 역사를 외면하고 논쟁을 회피하기만 한다면 그것은 비겁한 교육이다. 그리고 그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교육이 용기의 영역이 아닌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허용되고 열려 있는 사회적 분위기이다. 공격과 소모적인 정쟁이 아닌 사회적 합의와 제도로서 진정한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이 보장되길 바란다. <허수호 교육성장네트워크 꿈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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