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언어의 갈라파고스 72] 3부 오름-(31)‘거슨세미’와 ‘나단세미’ 지명이 붙은 사연

[제주도, 언어의 갈라파고스 72] 3부 오름-(31)‘거슨세미’와 ‘나단세미’ 지명이 붙은 사연
거슨세미오름은 골짜기에서 샘이 솟는 오름
  • 입력 : 2024. 03.12(화) 00:00
  • 송문혁 기자 smhg1218@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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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 방향은 상방, 바다 방향은 하방일까?


토산봉의 거슨세미, 골짜기에서 솟아 난 샘물을 이용한 다랭이논.

[한라일보] 구좌읍 송당리에 있는 오름이다. 표고 380m, 자체높이 125m이다. 화구가 서향으로 크게 벌어져 있다. 1530년 '신중동국여지승람', 1653년 '탐라지' 등에 삼미악(三美岳), 18세기 중반 '제주삼읍도총지도' 등에 천미악(泉味岳), 18세기 '해동지도'에 천악(泉岳), 이후 지도에는 세미오름으로 표기했다. 이들은 모두 제주어 샘, 사ㅣ미, 세미, 삼, 삼통, 새미 등 샘을 나타내는 발음을 나타내는 한자차용표기다. 이외에도 현지에서는 샘오름, 역천(逆泉), 역수산(逆水山) 등으로도 쓰는 실정이다.

이런 '거꾸로'의 의미가 들어간 한자를 차자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 오름의 화구 끝자락에 솟아나는 샘이 있다. 수량은 비교적 풍부하여 200여m까지 물골을 볼 수 있다. 이 샘은 화구가 벌어진 방향인 서쪽으로 흐른다. 즉, 한라산 방향으로 흐르는 것이다. 바다 방향으로 흐르는 것이 아니라 한라산 방향으로 흐른다는 점에서 거슨세미라 한다거나 이런 샘이 있어서 거슨세미오름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설명이 보인다.

거슨세미오름이란 용출한 물이 한라산 방향으로 흐르기 때문에 지어졌다는 것일까? 한라산은 상방이고 바다는 하방이라는 상하 개념은 언제 생겨났을까? 이곳에서 바라볼 때 화구방향은 넓은 벌판이 형성되어 있고, 완만한 경사를 이룬다. 경사 방향이 한라산 정상인 건 맞지만 거슬러 올라간다는 느낌은 없다. 어느 정도 흐르다 바로 스며들거나 습지를 형성한다.





토산 거슨세미와 거슨세미오름 거슨세미의 관계


거슨세미오름, 가운데 골짜기에서 샘물이 흘러나와 목장을 적신다. 김찬수

거슨세미란 이름의 샘은 또 있다. 토산리 표고 176m의 토산이라는 오름이다. 토산봉 또는 토산망이라고도 한다. 이곳에도 샘이 있는데 그 중 토산1리 마을 가까이에 솟아나는 샘을 지칭한다. 이 샘 역시 한라산 방향으로 흐른다고 하여 거슨세미라 부른다고 한다. 그런데 이 거슨세미는 자세히 살펴보면 한라산 방향 즉 서향이라기 보다는 북향으로 흐른다. 이 방향은 토산1리 마을 방향이다. 샘이 경사면을 따라 아래로 어느 정도까지 흐르지만, 그 방향은 지형상 높은 곳인 마을 방향이라는 것이다. 한라산 방향이 아니라는 반론에 내세우기도 하는 반론이다.

이 두 샘의 공통점은 이 외에도 있다. 둘 다 골짜기에서 솟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골짜기라는 지형 특성이 반영된 이름이 있을 것이란 추정이 가능하다. 세화1리와 토산1리 경계에 가세오름이 있다. 이 지명은 '가+세'에 '오름'이 덧붙은 구조다. 여기서 '가'는 '갈'에서 기원한다. '갈'이란 '골'을 말한다. '갈'에서 'ㄹ'이 탈락하여 '가' 또는 '가'가 된 것이다. 이 말이 무슨 말인지 몰랐던 기록자들이 '오름'을 덧붙여 '가세악'으로 이해하고 한자 표기하는 과정에서 '가세악'이 된 것이다. 결국 '가세악' 혹은 '가세오름'이란 '골짜기가 있는 오름'이다. 여기서 '세'란 솥, 삿, 쉬 등과 같이 봉우리를 의미하는 후부요소다. 이런 예는 봉개동 개오리오름에서도 똑같다. 골짜기가 있는 오름이라는 뜻의 '갈올'에서 기원하여 가오리오름으로도 전승하여 가오리를 닮은 오름이라고까지 해석하기에 이른다.

거슨세미오름의 지명도 마찬가지다. 이 이름은 골짜기에서 솟는 샘이라는 뜻에서 '갈세미'에서 기원했을 것이다. 이것이 점차 'ㄹ'이 탈락하여 '가세미'가 되고 여기에 사이시옷이 개입하여 '갓세미', '갓은세미'가 되었을 것이다. 이런 과정을 거치는 동안 한라산 방향 같은 관념적인 단어가 끌려 나와 오늘날의 거슨세미로 정착했을 것이다.





토산 이름에 숨은 비밀, 그 진정한 뜻은 무엇인가?


제주도는 지표수가 모자란 곳이다. 따라서 샘이건 연못이건 물을 귀하게 여기고, 물을 기준으로 생활권이 만들어지게 마련이다. 당연히 이름이 있게 마련이다. 오름이나 마을 지명에 물과 관련한 지명이 많다. 조천읍 대흘리 세미오름(샘이오름, 천미악), 제주시 아라동의 세미오름(삼의양오름, 삼의양악, 삼미악), 서귀포시 서홍동의 삼매봉(삼미악) 등은 대표적인 샘 지명 오름들이다. 제주시 삼양동은 마을 지명으로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이 외로도 샘과 관련한 지명은 전도에 산재한다.

거슨세미란 어원상 '골짜기 샘'이라는 뜻이다. 거슨세미오름이란 '골짜기에서 솟아나는 샘이 있는 오름'이다.

토산에는 거슨세미 외에도 나단세미가 있다. 이게 무슨 말인가? '나단'이란 제주어로 '오른'의 뜻이다. '나단손'은 오른손, '나단펜'은 오른편이다. 그렇다면 거슨세미는 '나단세미'의 왼편에 있다는 셈이 된다. 그럼 왜 '왼세미'라고 하지 않을까? '거슨'의 반대말은 '발른'이므로 '발른세미'라고도 할만한데 왜 그렇지 않을까? 여기엔 토산의 지명과 관련해서 중요한 단서가 숨어있다.

'나단세미'는 '돌'에서 기원한 말이다. 그렇게 추정하는 근거는 이렇다. 우선 토산이라는 오름의 이름에 있다. 토산은 이상하게도 한자어만 존재한다. 한자가 들어오기 전엔 무엇이라 했을까? 예컨대 이 오름과 바짝 붙어 있는 가세오름은 한자어가 아니다. '골짜기가 있는 오름'의 뜻이다. 그런데 '토산', '토산망', '토산봉' 등으로 지칭하는 이 오름의 이름 토산의 기원은 무엇인가? 토끼를 닮았다는 세간의 설명은 근거가 미약하다. '돌'에서 기원했다니 이건 무슨 말인가.

<김찬수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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