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제주의 해안선은 철새들의 기착지이면서 접선 장소이다. 멀리 남쪽 나라에서 올라온 천연기념물 팔색조는 절벽 위에 도착하자마자, 원기를 회복함과 동시에 신속한 판단을 해야 한다. 다시 해안선을 떠나야 할지, 제주의 곶자왈로 들어갈지, 머뭇거리는 순간 목숨을 담보 받지 못한다. 정신을 바짝 차려야 다음 세대의 안녕을 보장받을 수 있다. 팔색조의 무지갯빛 깃털 색을 노리는 천적의 시선을 피해야 하며, 방황하는 순간 자동차나 투명 벽에 충돌할 수 있다. 그러니 새들은 동료들과의 끊임없는 소통과 연대를 통해 고급 정보를 공유하며 보다 안전한 보금자리에 안착한다.
세상살이는 팔색조만큼이나 마음 졸이는 뉴스로 가득하다. 작금의 인류는 기후 위기, 불평등, 저출생, 역차별, 문화유산 소멸, 생태계 위협 등에 상당한 비용을 치르고 있다. 박물관의 중요한 책무는 개인-지역-국가 간의 소통과 연대를 통해 인류가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제시하고, 누구나 문화향유 행복권을 누릴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최근 국가유산기본법이 시행되면서 문화재청이 국가유산청으로 새롭게 출범했다. 이제 지방의 문화유산이 국가 문화유산과 동등하게 존중받아야 하며, 관행적인 차별을 묵인해서는 곤란하다. 이러한 시점에서 공립 박물관은 지역의 대표 명소로 환골탈태하기 위한 혁신과 도약이 필요하다.
1984년 5월 24일에 문을 연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은 섬의 화산 활동사를 비롯해 제주의 역사, 민속, 생태자원을 융·복합한 대표 도립 박물관으로, 누적 관람객 수가 3400만명이 넘을 정도로 성장했다. 하지만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박물관의 전시 콘텐츠와 미래지향성은 시대정신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각계각층으로부터 지적을 받고 있다. 왜 박물관이 탄생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제대로 흘러왔는지 냉철하게 되돌아볼 때다.
모두가 무한 경쟁시대에서 살아남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자기 몫만 챙기는 게 능사이고 상식이 되어버렸다. 박물관도 예외가 아니다. 개관 40주년을 맞은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은 '기록과 기억을 잇다' 기획 특별전에 이어 박물관의 발전방안을 논의하는 워크숍을 6월 14일에 개최한다. 이번 행사의 주제는 '공립 박물관의 역할과 공공성 그리고 지역사회와 연대'이며, 도내외의 박물관 관계자들과 함께 하는 열띤 발표와 토론의 장이다. 새처럼 깃털 갈이를 해야, 박물관도 더 높이 더 멀리 그리고 더 오래갈 수 있다. 곶자왈의 팔색조가 국가유산으로 대우받는 것처럼, 공립박물관도 지역성과 낙후에서 벗어나 새롭게 비상(飛上)하기 위한 탈출구를 찾아야 한다. 공립 박물관과 지역사회와의 동행과 연대는 전문성과 공공성을 바탕으로 한 박물관 핵심 기능이며, 국내외의 박물관 운영 사례를 공유하면서 박물관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전환할 태세를 갖추어야 한다. 이번 워크숍을 계기로, 전국의 공립 박물관들이 공영 관광지 수준에서 벗어나 문화향유기관으로서 가장 높은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김완병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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