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보잘것없지만, 존재가치 뛰어난 돌미
[한라일보] 큰돌리미 혹은 돌리미라고도 부르는 오름 이름과 똑같은 오름이 있다. 서귀포시 성산읍 수산리 4535번지다. 직선거리로는 불과 수 ㎞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표고 186.4m, 자체높이 26m다. 자체높이가 26m에 불과하니 조금 높은 언덕배기 정도로 보인다. 그래도 분화구가 선명하게 남아있고, 화산 폭발로 분출한 용암이며 쇄설물이 풍부하게 관찰된다. 이처럼 이 오름은 자체높이가 낮고 저경이 366m로 높이에 비해서 길게 뻗어 있어서 오름이라는 느낌은 거의 없다. 그래도 분화구에는 거의 연중 물이 고여 호수를 이룬다. 또한, 이곳에서 북동쪽으로 100여m 인근에 샘이 솟아나 커다란 웅덩이를 이루는데, 면적과 함께 깊이도 꽤 깊은 것으로 보아 수량은 풍부한 편이다.
이물은 콘크리트구조로 수조를 만들어 효율을 높였고, 가축에게 급수할 수 있도록 별도의 시설을 갖춰 오늘날도 사용하고 있다. 이 오름의 특징은 바로 이 물에 있는 것이다. 오름의 지질은 돌무더기 혹은 돌멩이들이 흔히 관찰되고, 이 돌을 이용한 밭담을 쌓은 걸 볼 수 있다. 조금 평평하다 싶은 곳은 빌레용암으로도 부르는 너럭바위로 되어있다. 건조한 풍경이다. 물론 오늘날의 풍경이긴 하지만, 고대인들에게 이런 외지고 물 한 방울 없을 것 같은 사막 같은 곳에서 이렇게 풍부한 물을 만난다는 것이 얼마나 반가운 일인가. 그러니 지형적으로 두드러지지 않아 지형지물의 기능도 내세울 게 없지만 고유한 지명을 남긴 것이다.
비치미오름, 주봉을 기준으로 한쪽으로 비스듬히 길게 뻗어내린 형태가 특징이다. 김찬수
돌리미는 물이 있는 오름, 꼬리와 관계없어
그런데 이 오름 이름이 어쩌다가 큰돌리미, 작은돌리미처럼 같은 돌리미면서 접두어도 붙지 않은 원조 돌리미가 될 수 있었을까? 이 오름의 지명유래는 오름의 한 부분이 마치 꼬리처럼 뻗은 데다 돌로 되어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들 한다. 한자로는 돌산(乭山), 돌이미봉(乭伊尾峰)이라 표기한다고 소개하고 있다. 다음지도와 네이버지도에는 돌미오름으로 표기했다. 돌산이라고 부르는 오름은 이 인근에 또 있다. 동북쪽 표고 166.2m인 오름이다. 이 두 오름은 이름 때문에 헷갈리기 쉽다.
돌산은 돌미 혹은 돌리미의 한자차용 표기다. 고대인들은 돌미라고 불렀을 것이다. 돌이미봉(乭伊尾峰)은 돌이미에 '봉'이 덧붙은 표기다. 여기에 음차로 붙은 '미(尾)' 때문에 꼬리가 길게 뻗은 점을 강조하여 유래를 설명하는 것이다. 입석(立石)이란 선돌로 해석할 소지가 있으므로 간혹 돌무더기를 끌어들여 설명하는 이가 있다. 그러나 이 이름은 돌리미라는 이름이 돌림에서 온 것으로 보고 이 돌림이라는 음이 돌립의 변음일 것이라는 추정에서 유추한 이름일 것이다. 이런 사정들을 보면 돌리미는 앞의 큰돌리미와 작은 돌리미에서 보는 바와 같이 물과 관련된 고유지명임을 알 수 있다. 돌리미라는 오름 지명은 물이 있는 오름의 뜻이다.
앞서 설명한 큰돌리미와 족은돌리미와 인접하여 비치미오름이 있다. 제주시 구좌읍 송당리 산255-1번지다. 표고 344.1m, 자체높이 109m다. 대천동 사거리에서 서귀포시 표선면 성읍리 방향 2.3㎞ 동측에 남서에서 동북으로 길게 뻗어내린 오름이다. 북동쪽으로 벌어진 말굽형 화구, 북동쪽 등성이는 길게 뻗어내려 말 안장 모양을 이루면서 동북 방향의 큰돌리미오름과 연결된다. 남동쪽 등성이 자락은 제주시 구좌읍과 서귀포시 표선면의 경계를 사이에 두고 개오름과 이웃해 있다.
돌리미오름, 건조한 너럭바위로 되어있으나 연중 마르지 않는 못이 있다. 저수조가 설치되어 있다.
꿩과는 상관없는 비스듬한 오름, 비치미
비치미, 비찌미, 비치산(飛雉山), 비치악(飛雉岳)이라고 부른다. 꿩이 날아가는 형국이라 하여 한자의 뜻을 빌어 비치산(飛雉山), 비치악(飛雉岳)이라 했고, 속칭인 비치미(비치메, 비찌미)도 그에 따른 것이라고 한다는 식의 설명이 널리 유포되어 있다. 고전이나 이 일대에서 채록한 이름들을 모아보면 비미악(飛尾岳), 비치산(飛雉山), 비치악(飛峙岳), 비치악(飛雉岳), 횡산(橫山), 횡악(橫岳) 등이 6개 정도다. 이들은 '비치-'와 '횡-(橫-)'의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이 이름들을 전체적으로 볼 때 고대인들은 그냥 '비치미'라고 했을 것이다. 지명을 '꿩이 날아가는 형국'이라고 했을 리는 만무하기 때문이다. 이런 발음을 그대로 문자로 표현한 것이 비치(飛雉), 비치(飛峙)다. 훈가자 차용방식이다. 발음을 문자(한자) 그대로 적는다. 그러므로 여기 동원된 한자 비(飛, 날 비), 치(雉, 꿩 치), 치(峙, 우뚝 솟을 치) 등 한자의 뜻은 아무 의미가 없다. 여기에 '미'를 산이나 오름을 나타내는 지명소라 보고 산(山) 혹은 악(岳)을 붙이게 되었다. 그런데 횡산(橫山), 횡악(橫岳) 등에 쓰인 횡(橫) 자는 '빗기다 혹은 옆으로 누이다'라는 뜻을 가진다. 그러므로 비치미의 뜻을 옆으로 누인 산으로 보고 지은 이름이다. 이 경우 횡(橫)은 발음을 적은 것이 아니라 뜻을 적은 글자이다. 이렇게 한자를 훈으로 읽고 그 본뜻도 살려서 차용한 차자를 훈독자라 한다. 결국 횡산(橫山), 횡악(橫岳)는 '빗기미' 혹은 '빗기오름'이라 쓰고자 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김찬수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장
이 오름은 남서에서 동북으로 길게 뻗어내린 형태가 특징적이다. 주봉을 기준으로 한쪽으로 비스듬해 보인다. 따라서 비스듬해 보이는 형태적 특징을 이름에 담은 것이다. 꿩이 날아간다느니 하는 한자 풀이식 지명 해석은 아무 근거가 없다. 따라서 비치미오름이란 비스듬한 오름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돌미와 비치미에는 왜 공통으로 '미'가 붙었을까?
김찬수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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