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동산마을기록단의 아카이브근대건축과 지역 연계 활용 등발간·연구 작업 등 꾸준히 진행지역 공유하고 공감대 확산 필요
송산동서귀마을회도 의기투합
건축물 조사·옛 자료 수집 추진
[한라일보] 서귀포시 솔동산 문화의 거리 서측. 차 한 대가 겨우 빠져나갈 수 있는 도로 옆 빈터엔 진초록 호박 줄기들이 길게 뻗어 나가 바닥을 덮고 있었다. 지금은 사람이 살았던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지만 서귀포 바다와 가까운 그곳은 이중섭이 머물며 창작했던 공간이라고 했다. 90세가 넘는 지역 주민의 증언에 따른 것이다. 송산동 서귀마을에서는 이중섭거리와 솔동산거리를 연결해 더 많은 이야기를 끌어낼 수 있다고 여겨 그 공간을 살리기 위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솔동산 거리 보행로 바닥에 '이중섭 산책로'라는 문구가 새겨졌다. 그 너머에 이중섭거리가 있다.
▶서귀동의 우수 건축 자산 후보 18개소 선정="1985년 한때 인구 8500명에 달했던 '서귀포의 명동'은 언제부터 모텔촌이 되었고 왜 밤이면 유령도시로 변하는가? 거꾸로 이 질문을 앞서 '서귀포 근대역사문화 아카이브는 왜 필요하고 지금 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변으로 대신하고 싶다."
2019년 서귀포문화도시 조성 사업으로 '서귀동 솔동산마을기록단'에서 다이어리 사이즈의 '서귀동 솔동산마을-일제강점기 1870년~1950년'을 펴내면서 쓴 말이다. '서귀동 솔동산마을'은 2019년 8월 한 달간 솔동산 마을 아카이브 사업을 정리한 결과물로 120여 쪽 분량으로 제작됐다. 접이형 지도도 나란히 나왔다.
이는 과거 서귀포의 중심이었던 솔동산의 근대 공간을 조사해 서귀포의 탄생과 발전 과정을 담아보자는 의도로 만들었다. '송산동은 어디인가'에서 출발해 공공 기관, 교육 기관, 산업 시설, 상업 시설, 역사 유적, 숙박 요식업, 종교 의료, 연표와 건축 목록 순으로 글과 사진 등이 실렸다. '제주도 서귀포 도지청'(서귀동 713번지 서귀진성 터 북측)에서 '보생의원'(서귀동 666번지)까지 하나하나 지번을 달아 그에 얽힌 내력을 설명한 곳이 약 50개소에 이른다.
제주대 산학협력단 연구 용역에서 우수 건축 자산 후보 중 하나로 선정했던 적산가옥(왼쪽)과 고씨 상가 주택(오른쪽)이 나란히 서 있다.
그보다 앞서 2017년 송산동주민센터에서 묶은 '송산의 바람'에도 솔동산의 오랜 역사를 풀어놓은 장들이 있다. 그 내용을 보면 일제강점기 솔동산에는 일본인 가옥들과 그들이 운영하던 여관, 잡화점, 식당, 어구류 상점 등이 길을 따라 늘어섰다. 6·25전쟁 중에는 피난민들이 유입되면서 인구가 증가했다. 그러다 1965년 '서귀읍도시계획안'이 건설부 고시로 확정되고 1980~90년대 솔동산 일대에 있던 남제주군청, 서귀포경찰서, 등기소, 우체국 등 관공서가 북쪽으로 이전되면서 점차 인구가 감소하는 도심 공동화 현상이 나타났다
지난해에는 제주도의회 의원 연구 단체인 지역문화특화발전연구회에서 제주대 산학협력단에 의뢰해 '서귀포시 동지역 근대 건축의 가치 및 지역문화 연계 활용 방안 연구' 용역을 진행하고 이를 토대로 토론회를 열었다. 용역진은 서귀포 솔동산마을 기록단의 자료를 참고해 일제 강점기 상업, 의료, 숙박 시설 위치를 재구성하는 등 20세기 중반 이후를 시간적 범위로 정해 서귀포시 동지역에서 170건의 건축 자산을 뽑아냈다. 이를 다시 사회문화·역사·경관·예술적 가치로 나눠 점수를 매겼고 최종적으로 서귀동에 있는 우수 건축 자산 후보 18개소를 추렸다. 여기에는 이중섭거리의 옛 서귀포관광극장, 이중섭 거주지도 들어 있지만 솔동산 지역에 흩어진 건축 자산들도 적지 않다.
서귀진지 방면의 솔동산 거리 조형물.
▶이중섭 창작 공간 추정 장소 등 후속 논의 예정=이처럼 물자와 사람이 모여들던 솔동산에 눈길을 돌린 작업들은 꾸준했다. 이제는 그것들을 꿰는 노력들이 필요하다. 화려했던 시절의 회상에 멈추는 것이 아니라 지역 주민들의 자부심을 키우며 서귀포의 미래 먹거리로 키울 수 있는 가치를 발견하기 위해서다. 그간의 발간물이나 연구 결과가 지역에 공유되고 공감대를 이루는 과정이 뒤따라야 하는 이유다.
그런 점에서 도시재생 일환으로 근현대 건축 자산과 관련 인물을 연계한 '서귀포시 동지역 근대 건축의 가치 및 지역문화 연계 활용 방안 연구' 용역에서 꺼냈던 안들에 대한 논의가 진전되면 좋을 것이다. 제주대 산학협력단은 당시 건축물 관련 인물상 조사 등을 통해 강의원(근대 의료 시설)과 고씨 상가 주택(근대 근린 생활 시설) 2곳을 시범 사업 대상으로 꼽았다. 강의원 빌딩은 갤러리 카페와 야외 콘서트장이 있는 곳으로, 고씨 상가 주택은 4대째 이어지는 예술가 가족의 사연을 품은 가족뮤지엄으로 각각 제안하는 등 인물과 역사, 문화예술을 바탕으로 다양한 세대가 공존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냈다.
서귀포시 서귀동 이중섭 창작 공간으로 추정되는 곳. 지금은 빈터로 남아 있다.
시범 사업 대상은 아니지만 고씨 상가 주택 옆에 자리한 건축물(강성모 전 서귀포면장의 건물 부지)도 18개 우수 건축 자산 후보 중 하나로 주목했다. 그곳에는 헐리기 직전의 적산가옥이 있다. 용역진은 "서귀포시의 정체성을 담을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했으면 한다"고 했지만 의견 제시로 그칠 가능성이 커졌다. 서귀포시가 주차장으로 쓰기 위해 매입한 부지로 최근 철거 작업이 진행 중이어서다. 서귀포시의 계획대로 12대의 차량을 세울 수 있는 공영주차장이 들어서면 서귀포의 수많은 시간들이 축적되어 있는 건축 자산이 소리 없이 사라지는 셈이다.
이런 가운데 송산동서귀마을회에서 공공건축가, 지역 도의원 등과 함께 솔동산 거리 활성화를 넘어 서귀포의 기억을 모으고 기록하는 활동에 걸음을 떼어놓고 있다. 이들은 역사가 깃든 건축물을 파악하고 사진 등을 수집해 온·오프라인에 펼쳐 놓으려 한다. 이중섭 창작 공간으로 추정되는 장소를 매개로 이중섭거리와 솔동산거리를 자연스레 잇는 방안도 구상하고 있다. 송산동서귀마을회의 김국철 총무이사는 "서귀마을만이 아니라 서귀포의 근현대사가 여기에서 이뤄졌다. 어르신들의 나이가 들면서 그 기억들이 방치되고 있다. 매일시장, 학교, 우체국, 여관 등이 있던 곳인데 한 세대가 지나면 잊힐 이름들이다. 이제는 지난 시기를 돌아볼 때가 됐다"며 더 늦기 전에 '서귀포의 시작'인 송산동의 이야기를 붙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글·사진=진선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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