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영의 건강&생활] 구순 할머니의 건강 비결

[이소영의 건강&생활] 구순 할머니의 건강 비결
  • 입력 : 2024. 08.07(수) 00:30
  • 송문혁 기자 smhg1218@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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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필자에게는 올해 구순을 맞이하시는 외할머니가 계시다. 평균 수명이 늘었다지만 구순을 넘기는, 그것도 비교적 건강한 상태로 오래 사시는 분은 그리 많지 않은데 할머니께서 여태 우리 곁에서 잘 지내고 계신 것을 생각하면 새삼 대단하시게도 느껴지고 감사한 마음이 든다. 이쯤 되면 장수할 체질을 타고 나신 건가 싶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오히려 고혈압 같은 위험 인자들을 가지고 계셨는데 워낙 자신에게 엄격한 분이라 관리를 잘 하셨다. 내가 아는 할머니의 건강 장수 '비결'을 멋지게 공개하고 싶지만 아쉽게도 비밀이랄 것도 특별할 것도 없다. 굳이 꼽자면 첫째는 수 십 년 간 하루도 빠지지 않고 운동을 해오신 것, 둘째는 병원에서 주는 처방약만 철저히 복용하고 온갖 영양제나 특효약 따위에는 무관심 하셨던 것 정도가 생각 난다.

평생 건강히 독립적으로 잘 지내오신 할머니가 작년에 크게 다치신 일이 있었다. 집에서 문을 열다 부딪히는 정도의 일이었는데 약해진 뼈로 인해 그만 골절상을 입으시고 말았다. 다행히 수술이 가능하다 해 뼈를 고정 시킬 수 있었고 더더욱 다행히 회복도 잘 하셨다. 이 과정에서 온 가족이 이제는 혼자 계시게 두면 안된다는 데 의견을 모아 반 강제로 할머니의 거처를 자녀들 중 하나의 집으로 옮기게 되었다. 그런데 평소에는 꽤 합리적이시던 할머니가 자꾸 자기 집으로 가신다고 고집을 피우시는 것이다. 몇 달에 걸친 갈등 끝에, 기어이 혼자 지내시는 집으로 돌아가셔서 사실 지금도 마음 한 편으로는 걱정스럽다.

할머니가 집으로 가셔야 하는 많은 이유 중에는 거의 평생을 사신 구도심의 집에 가 계셔야 친구분들이 오다 가다 들를 수 있다는 것도 있었다. 당시에는, 다쳐서 수술까지 하신 분이 지금 친구들이랑 노는 게 더 중요하다고요? 라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여기에 할머니의 건강 장수 비결 세 번째가 숨어 있을지도 모르겠다. 우리의 건강을 결정하는 것들 중에는 우울, 불안 같은 대표적인 정신과적 증상들 말고도, 외로움 그리고 사회적 연결성이라는 인자도 있다. 비교적 근래에 외로움이라는 감정에 관해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는데, 외로움이 정신 건강 요소들과 큰 관련이 있을 뿐 아니라 삶의 질, 신체 기능, 인지 기능, 또한 수명에도 안 좋은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화목한 가정은 물론이고 가까운 친구들과 좋은 관계를 맺는 것, 즐겁게 "노는 것" 그 자체가 사람을 건강하게 오래 살게 한다는 것이다. 아마 칠, 팔 십 년 된 친구분들과의 윷놀이 모임이 할머니의 세번째 건강 장수 비결인가 싶다. 사회 구성원 간의 유기적 연결 고리가 사라지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세 번째 건강 장수 비결은 점점 실현하기 어려워지고 있지만 가족, 친구, 이웃과의 좋은 관계가 어떤 명약보다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걸 많은 분들이 기억하면 좋겠다. <이소영 하버드대의과대학 브리검여성병원 정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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