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원래 옛이름은 과납(科納)이었다. 700년 오랜 역사를 가진 마을. 과오름 남쪽에 위치해 평온함이 가득하다. 일제강점기 명칭이 납읍리로 바뀌었다고 한다. 제주에서 邑(고을 읍)자가 들어가는 마을은 성읍리와 납읍리뿐이다. 마을 이름이 바뀌던 당시 어르신들이 애월의 중심이라는 뜻에서 고을 읍자를 고집했다고 한다. 그러한 의식은 조선 중기 이후, 중앙무대에서 20여 명의 과거급제자가 속출함에 따라 문촌으로 명성을 떨쳤던 영광과 무관하지 않다. 많은 훈장들과 서당이 있어서 사학의 중심지였던 과납. 학문을 연마해 벼슬길에 나가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였던 납읍리는 그 후손들 또한 공직자들이 유난히 많다. 출향인사들 중에 세상에 공헌하는 분들 또한 수두룩하니 마을 공동체가 보유한 독특한 정신적 자산이 얼마나 후손들에게 큰 자양분이 되고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라고 해야 할 것이다.
김보성 이장
천연기념물 375호로 지정된 금산공원은 1만3000평에 이르는 면적에 난대식물 200여 종이 서식하는 자연의 보물창고다. 자연림 속을 걷다 보면 그 옛날 인상정에서 선비들이 시를 읊던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이 숲은 마을의 신전과도 같은 의미를 가진다. 포제청이라고 하는 기와집이 있어서 그곳에서 남성들이 주관하는 유교의식으로 마을제를 올린다. 그 원형이 문화재적 가치를 인정받아 1986년 제주도무형문화재 6호로 지정되어 내려오고 있다.
선비마을이라는 명예를 보유하게 된 것은 교육열이라고 하는 정신적 자산에서 비롯하였으리라. 그러한 자긍심에 위기가 닥친 것, 농촌 인구 감소로 인해 납읍초등학교가 분교로 전락하게 될 수 있다는 현실에 봉착하게 되면서였다. 1998년 마을 주민들을 비롯한 출향인사들이 선비마을이라는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내놓은 해법은 놀라웠다. 마을 성금을 모아서 연립주택을 지어 초등학교 어린이가 있는 가정에 무상으로 입주를 시켜주겠다는 것. 단 한 푼의 행정적 지원도 없이 오직 마을 주민들이 일심단결해 실천으로 옮긴 결과 납읍초등학교는 지금까지 건재하다. '문화적 자긍심은 어떤 경제적, 사회적 요인도 움직이게 한다'는 것을 입증한 고귀한 사례라고 해야 할 것이다.
양반고을이라고 하는 주민 자긍심은 납읍리를 관통하는 문화이며, 하나의 가치 기준이다. 천민자본주의에 찌든 사람들이 있다면 납읍리 주민들의 정신세계 속에 젖어들어볼 필요가 있다. 남에게 베푸는 것을 인생의 품격으로 여기는 사람들의 공동체이기에 이웃 간에 정이 넘치고 정신적 풍요로움이 가득하다.
납읍리 주민들의 깊이 있는 결속력은 멀리 보고 뚜벅뚜벅 실천해가는 것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1917년부터 시작해 23년에 걸친 주민들의 피나는 노력의 결과로 사장물이라고 하는 둥근 형태의 식수천을 만들어낸 토목의 역사. 경거망동하지 않고 진득하게 꿈을 실현해가는 전통을 여기서 발견하게 된다. 마을공동체의 일이 곧 자신의 일이라 여기던 시대가 아직도 납읍리에서는 끝나지 않은 진행형이다.
김보성 이장에게 납읍리가 보유한 가장 큰 자긍심을 묻자 간명하게 대답했다. "공경심입니다." 마을 공동체를 이끌어주는 힘이라는 것이다. 어른과 선배에 대한 공경문화가 결국은 후배들에 대한 존중으로 선순환하면서 동력을 얻는 정서적 시스템. 출향 인사들 중에 인구 대비 인물이 많이 배출되는 것은 그러한 풍토 속에서 성장해 체질화된 마인드로 사회생활과 자신이 속한 조직에서 활동하게 되므로 모두가 인정하고 함께 일하고 싶은 존재가 된다는 설명이다. 후세를 위해 물질적 재산을 물려주기에 앞서 정신적 자산을 물려주려 했던 사람들, 마을 공동체라고 하는 부가가치가 순기능을 발휘하게 될 경우에 어떤 위력이 발생되는지 보여주는 마을이다. 개인주의와 이기주의에 찌든 현대인들에게 납읍리라고 하는 마을 전통은 부러움의 대상이요 배움의 대상인 것이다. '아름다운 유지관리'라고 하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마을이 보유하고 있는 정신적 자산을 후대에 계승하기 위한 숨은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시각예술가>
뙤약볕 눈부신 금산공원 옆길<수채화 79cm×35cm>
천에 수를 놓듯이 그려야 발생되는 광선이 있다. 울창한 나무숲의 8월. 폭염에도 아랑곳 하지 않는 품격을 그리려 하였다. 마을의 유구한 역사성을 보여주는 금산공원과 잇닿은 밭이며 동백나무 그림자 드리운 길. 그리고 원경에 보이는 집들이 거대한 짜임을 이루고 있다. 나무 색의 미세한 차이와 명암으로 넘실거리는 풍요로운 생명력을 연필담채로 담아내는 것은 며칠에 걸친 각고의 산물이다. 원시림과 경계를 이룬 밭담에 내려앉은 그림자가 나무의 공간감과 깊이를 알려주고 있다. 뙤약볕에 노출된 길과 밭 사이 돌담 행렬은 이 섬이 지니고 있는 독특한 서정성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눈부신 광선의 양을 표현하는 일은 수채화가 보유한 지극히 괴로운 과정이거니와 세심한 밀도 차이가 상호 작용해야 한다. 하늘에 색을 일부러 칠하지 않은 이유는 어딘가 모르는 동양화적 정한을 끌어오기 위함이다.
길가에 드리운 그림자가 실재 상황은 더 짙게 깔려 있었지만 부드럽게 처리한 이유는 주제가 오른쪽 나무군락이기에 그렇다. 뜨거운 햇살을 받은 모든 물상이 반사해내는 광선을 포집하는 작업이 이 그림이 추구하는 궁극 목표다. 원근법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화폭의 현실이지만 금산동산의 나무들은 워낙 강렬한 에너지를 발산하고 있기에 다른 영역들을 압도하고도 남는다. 색채를 통한 표현을 절제하고 형태와 명암의 강도를 중시한 그림이 어떻게 빛을 표현 할 수 있는지 확인. 다른 시간대에 그리면 확연하게 다른 느낌을 줄 것이다.
한라, 그 웅비의 날개<수채화 79cm×35cm>
납읍리의 유구한 역사를 자연풍광 속에서 상징적으로 보여줄 대상을 찾아 며칠을 돌아다녔다. 그러다가 마을 남쪽으로 올라간 높은 지대에서 한라산을 바라보고 700여년 전 이 곳에 설촌한 이유를 발견하였다. 지극히 개인적 상상력에 불과한 관점이지만 한라산이 마치 대붕의 날개짓을 닮은 위치에서 호연지기를 키우며 성장할 후손들을 생각해 터를 잡았으리라는 것. 오직 청색과 녹색으로 대비되는 간명함 속에 풍경화가 보유한 원근요인이 파생되었다. 나뭇가지 하나하나에 신경이 곤두서는 근경이라야 저 멀리 한라의 간결한 날갯짓이 더욱 힘을 얻게 된다. 밀한법이라고 하는 전통적 미감을 가져온 것이다. 빽빽함과 한가로움을 대비시켜 미학적 쾌감을 발생시키는 북종화의 논리를 수채화로 구현해 넘실거리는 저 날개능선에 생명력을 불어넣고 싶었다.
납읍리에서 바라보는 한라산이 어떤 의미와 매력을 지니고 있는지 확인하는 작업에 신바람이 불었다. 또한 안온한 느낌이다. 두 팔 벌려 할아버지 품속으로 달려오는 손자를 안아줄 것 같은 아름다움. 그리는 내내 우리말 '아름다움'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아름답다는 단어를 이렇게 배웠기에 그렇다. <아름(한 아름, 두 아름 팔은 벌려 안아주는) + 답다= 안고 싶다. 안음직 하다> 웅원한 내리사랑이 느껴지는 저 품속으로 초록 생동감이 줄달음쳐 간다. 과거시험 공부에 여념이 없던 선비들이 이 지점에 올라와 한라산을 바라보며 웅비의 꿈을 키웠으리라는 상상을 그렸다는 보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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