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觀] 애프터 라이크

[영화觀] 애프터 라이크
  • 입력 : 2024. 08.09(금) 05:30
  • 송문혁 기자 smhg1218@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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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힘을 낼 시간'.

[한라일보]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사이에서도 좋아한다는 말은 서로에게 큰 응원과 벅찬 설렘이 된다. 특히 그 말을 용기 있게 꺼내는 화자의 확신은 당당하게 빛나기 마련이다. 당신을 좋아합니다. 당신의 춤을, 그림을, 글을, 속도를, 노래를, 미소를, 눈빛을, 노력을, 행보를 그리하여 모든 것을 좋아합니다. 라는 고백은 청자에게는 힘이 되는 주문일 수 밖에 없다. 사랑에 빠지는 일이 두 사람 사이에서 벌어지는 마법이라면 누군가의 모든 것을 좋아하게 되는 일은 둘만의 사랑과는 또 다른 의미에서 사랑의 기적이다. 미세먼지로 덮인 밤 하늘에서도 반짝이는 별 하나를 찾아내어 소원을 비는 것처럼 지금 우리에게는 '각자의 스타'가 있어 낮에도 밤에도, 먼지와 폭우에도 개의치 않고 작고 황량한 우리들의 마음을 환하게 비추고 있다.

바야흐로 아이돌과 팬덤의 시대다. 케이팝은 전세계를 들썩이는 거대한 흐름으로 자리 잡았고 문화예술의 그 어떤 분야보다 막강한 파급력으로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다. 유소년 세대에게 아이돌은 어느덧 우상인 동시에 롤모델이 되어 가고 있고 세대에 국한되지 않고 아이돌이란 존재는 누군가의 일상에 활력을 주는 반짝임으로 자리하고 있다. 멀리 있지만 또 가까이 있기도 한, 마치 화려하고 빛나는 그 조명을 내 방 안에 두고 싶은 마음처럼 그렇게 우리는 별을 보며 살아간다.

'십개월의 미래'를 연출한 바 있는 남궁선 감독의 신작 '힘을 낼 시간'은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제작한 15번째 인권영화로 '이 시대의 별' 아이돌을 주인공으로 담고 있는 작품이다. 은퇴한 아이돌인 수민과 태희 그리고 사랑이 학창 시절 가지 못했던 수학 여행에 대한 미련으로 뒤늦게 제주로 향한다. 은퇴를 했다지만 채 서른이 되지 못한 어린 나이인 이들의 여행은 계획처럼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는다. 우연한 싸움에 휘말려 여행 경비를 모두 잃은 셋은 제주의 귤 밭에서 귤 따기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다. 그런데 너무 일찍 경험한 사회 생활은 이들을 웃자라게 만든 동시에 성마르게도 만들어 놓았다. 강한 책임감과 죄의식을 함께 갖고 있는 수민, 철부지처럼 보이지만 속 깊은 태희,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사랑까지 셋 모두 속 편한 여행자가 되기에는 아직 다 하지 못한 말, 끝내지 못한 순간들이 너무 많다. 빛을 잃은 별들은 다시 반짝일 수 있을까.

세상이 동경하는 별의 수는 한정되어 있고 별을 꿈 꾸는 사람들은 계속 태어난다. 사랑은 낭만적인 마음에서 시작되는 행위지만 적자생존의 세계에서 사랑은 수치화의 도구로도 쓰여진다. 수많은 오디션 프로그램에서는 당신이 응원하는 아이돌에게 투표를 독려하며 말한다. '당신의 사랑으로 누군가가 생존할 수 있다고.'. 그러니까 이 사랑이 기적이라고 불릴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이것이 누군가의 '생존'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꿈에 옆구리를 딱 붙이고 있는 생계란 어쩐지 잔인한 생의 계략처럼도 들린다. '힘을 낼 시간'은 통증에 무감해진 이들, 기약 없는 기다림에 능숙해진 이들의 얼굴에 어리는 피로를 공들여 들여다 본다. 누군가의 앞에 서기 위해 나의 뒤를 돌아볼 여유가 없던 이들의 지나온 시간이 자신의 얼굴에 스며들어 있다는 것을 그들 스스로가 알아낼 때 까지. 그래서 꿈이 나에게 허락한 것이 결코 소멸되지 않았다는 것을 믿을 수 있게 말이다. 반짝인다고 모든 것이 금일 필요가 없다는 것을 우리는 생의 우연한 빛들을 통해 알게 된다.

아이돌 그룹 아이브의 노래 '애프터 라이크'에는 이런 가사가 있다. '난 저 위로 또 아래로 내 그래프는 폭이 커 yeah that's me.' 그러게, 삶의 낙폭을 실패와 성공으로 읽을 필요는 없다. 오르고 내려오는 즐거움 이야말로 세상 모든 도전을 반복할 수 있는 힘일 테니까. 그러니까 아직 다 겪지 못한, 다 맛 보지 못한, 무수히 남아 있을 '좋아진 다음'을 위해 힘을 낼 시간이다. 사랑의 기적을 만들어 낸 이들은, 그래서 사랑이 가진 큰 힘을 마음 속에 품은 이들은 언제든 다시 기적을 행할 수 있는 빛의 조각들이다.

<진명현 독립영화스튜디오 무브먼트 대표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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